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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쉬는 돌 Feb 19. 2024

08 내겐 너무 어려운, 스위스 교통패스

지나친 친절은 친절하지 않다



깨닫고 보면 자명한 사실인데 질러가진 못하고 복잡한 길을 빙빙 돌아 겨우 닿을 때, 세상 이치가 원래 그런 건지 내가 특별히 어리석은 건지 어리둥절해지곤 한다.
 <올드독의 제주일기> 정우열


 -여행 전-
뚜벅이 여행자로 노선을 확정한 후, 꼭 필요한 교통수단들을 여행 전에 예약했다. 스위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 국가 간의 이동이 있으므로 유레일 패스를 먼저 구입했고, 하루에 한 대뿐이라서 예약이 빨리 마감되는 피렌체-빈 구간의 야간열차도 순조롭게 끝마쳤다.




문제는 스위스였다. 교통비가 워낙 비싼 지역에 4명 가족이다 보니 패스 구입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스위스 특히 인터라켄 지역은 다른 시에 비해 패스의 종류가 많다. 나하나 들여다보면 좋은 조건이긴 한데 종류가 많다 보니 나에게 딱 맞는 패스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혼자 여행이라면 내 여행구간과 스타일에 맞춰 선택하면 되겠지만, 아이들이 있으니 어린이 할인이나 무료티켓도 많아서 표를 만들어 비교를 해 봐야 했다. 몇 날 며칠을 머리를 쥐어짜도 어려운 스위스패스. 마침내 항복을 선언하고 SOS 구조를 보냈다. 나와 스무 살 초반 거지꼴로 유럽 배낭여행을 함께 했으나 대학 졸업 후 유럽전문 배낭여행사에 다니며 세계 곳곳을 멋지게 누비던 친구찬스!


"그래서, 어디 몇 박?"

"취리히 2박, 인터라켄 3박, 그린델발트 2박 후 이탈리아로."

"가서 하고 싶은 일정은?"

"융프라우, 아이거, 갖가지 액티비티들."

"음.. 유레일 패스가 있으니 취리히 인터라켄 구간은 가능하고, 그럼 이 날부터 인터라켄인데 날씨를 보니 계속 구름이야. 언제 융프라우에 올라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으니 계속 날씨 체크 하면서 움직여야 해서 변동사항이 생길 거고.. 아, 액티비티는 피르스트가 좋아. 쉬니케도 엄청 예쁜데 너희 가는 시기에는 운행을 안 하네, 아쉽다. 피르스트랑 아이거, 융프라우라.. 그러면 <융프라우 VIP패스>가 낫겠네."


머리를 짜내는 친구의 뒤편에서 후광이 비쳐오는 것 같았다. 자신의 모든 경험치를 동원하여 친구가족의 여행을 위해 애쓰고 있는 나의 오랜 친구. 이십여 년 전 풋했던 우리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피르스트에서 액티비티 하고 나면 여기 가 봐. 갓 구운 와플에 올려주는 크림이 진짜 맛있어."

"... 야, 근데 기억나? 우리 예전에 같이 유럽여행 갔을 때 돈 없어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서 나눠 먹은 거."

"크크 기억나지 그럼. 제일 싼 유스호스텔 갔더니 2층 침대인데 사다리 없어서 그나마 좀 큰 니가 올라가겠다 해서 낑낑거리고 올라갔는데 바로 화장실 가고 싶어서 엄청 참았었잖아. 나는 1층침대에서 2층에 있던 니 매트 맨날 발로 차고."

"베네치아에서 침낭 어버리고 길은 못 찾겠는데 비둘기 똥 맞았던 거...."


벌써 백 번은 더 이야기했을 에피소드들을 또 꺼내어 낄낄거린다. 내가 비싼 가방은 포기해도 여행은 포기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평생을 두고 우려먹을 이야깃거리가 생기니까. 서로의 서투르고 부족했던, 그렇지만 여리고 예뻤던 그때의 모습이 언제든 소환된다. 내 아이들도 살면서 지칠 때 지금 여행을 꺼내 되새길 날이 있겠지. 너희에게 작은 위로가 되는 기억이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친구찬스를 썼기에 망정이지, 스위스 패스는 구간별, 시기별, 종류가 정말 다. 잘 선택하면 돈도 절약되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마음껏 누빌 수 있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딱 맞는 패스를 고르려면 쉽지가 않다. 마치 뷔페 음식처럼, 먹음직스러운 것이 지천이지만 내 입에 딱 맞는 음식을 딱 골라 먹기는 힘들다는 느낌?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어떤 이동수단을 택하든, 어떤 패스를 선택하든 스위스에서는 기대 이상의 경험을 하게 되리라는 것!



혹시라도 스위스 여행을 준비하는 분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은 마음에 남겨보자면, 우리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융프라우철도 한국총판인 '동신항운'에서 보내준 책자이다.
https://www.jungfrau.co.kr/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할인쿠폰 신청> 란이 있는데 무료로 쿠폰과 작은 여행 책자를 보내준다. 소책자 안에는 대중교통 시간과 노선뿐 아니라, 구간별로 통행이 가능한 날짜와 금액까지 정말 자세히 안내되어 있다.
처음에는 그저 홍보책자겠거니 했던 그 작은 책을 여행 내내 보물처럼 들고 다녔다. 여행사에 다녔다는 친구도 그 책이 정말 잘 나와있다며, 이런 걸 어디서 구했냐고 감탄할 정도였다.
부디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되시길!!




유스호스텔에서 든든하게 조식을 챙겨 먹고,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인터라켄 동역으로 가서 <융프라우 VIP패스> 4일권을 구입했다. 아이들은 만 12세 미만이라서 30유로만 추가하면 어른과 똑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4일 안에 한 번은 융프라우를 갈 수 있고, 곤돌라 다른 대중교통 유람선을 거의 다 이용할 수 있으며 각종 액티비티를 할인받을 수도 있다.(그 유명한 융프라우 정상에서의 신라면도 포함!)


다른 교통수단은 여러번 이용할 수 있으나 융프라우는 단 한번 사용 가능하므로 사용후에는 펀치로 구멍을 뚫어준다.


 잃어버리지 않도록 가방 제일 안쪽으로 꼭꼭 챙겨 넣고 아이거 곤돌라를 타보기 위해 기차에 올랐다. 흐린 날씨지만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숨길 수는 없다. 나도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을 숨길 생각이 없고. 투가 날 만큼 매혹적인 상대에 안겨 감탄만 할 뿐이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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