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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쉬는 돌 Aug 07. 2024

쓰는 사람


내가 어릴 때, 엄마는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셨다. 서예, 테니스, 피아노, 바이올린, 미술 데생, 합창 등등. 엄마가 이러한 예체능 과목들에 학원비를 투자할 때마다 매번 기대감이 깔려있었을 거라고 이제야 (내 아이를 키우고 나니) 짐작해 본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기대 대로 자라지 않았다. 앞에 언급된 것 중에 내가 꾸준히 하거나 두각을 나타낸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한마디로 학원비를 날려 먹은 셈이다. 대신 나는 배워본 적 없는, 심지어 재료나 장비도 필요 없이 연필만 하나 있으면 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합법적으로 학교를 빠질 수 있다는 불순한 의도로 참여한 글짓기 대회에서 슬슬 상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 중학교 1학년 때 단편 소설을 써서 입상이 된 적이 있었다. 제법 큰 기관의 대회여서 입상한 학생들에게는 [문예 캠프]라는 특권이 주어졌다. 3박 4일의 캠프 동안 많은 소설가, 시인 등의 멘토가 방문하여 강의를 해 주었고, 합숙 기간에 몇 편의 글을 더 써내어 선발된 몇몇은 순위별로 더 큰 상금과 상을 받았다.

뽑힌 사람들 중 나를 제외하고는 거의 고등학생이었다. 물론 나에게 강의는 어렵고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진지하게 수업을 듣고 토론하는 멋진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나도 뭔가 멋진 사람이 된 것 마냥 으스대는 기분이었다는 것은 아직도 선명하다. 제대로 글을 쓰기도 전에 겉멋부터 들었던 것이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다른 것은 거의 잊었지만 구효서 선생님의 말씀은 아직 간직하고 있다. "여러분은 어쩔 수 없이 글쟁이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을 거예요. 마치 무당이 굿을 하지 않으면 아픈 것처럼. 여러분은 아마도 그런 운명을 타고 난 사람들일 겁니다. 나도 그랬거든요." 그때 생각했던 것 같다. 맞아, 나는 평생 글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게 되겠구나.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안 했던 건지)




대학 진학을 선택하던 시기가 왔다. 나는 막연히 생각했다.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을까?' 내 주변의 어느 누구도 나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어째서 먹고살 걱정 같은 걸 먼저 했던 걸까. 열아홉 그 반짝거리던 시기에 말이다.

나는 문예창작학과를 포기하고 문헌정보학과를 택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은 금방 알게 되었다. 대학에서는 도서관의 경영이나 시스템을 중심으로 수업했고, 나는 그것들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타 대학 도서관으로 실습을 나간 4학년 때도 서가정리를 하다가 마음을 뺏긴 책이 있으면 구석에 숨어서 읽곤 했다.


졸업 후에는 작은 리크루트 회사에 입사했다. ‘출판팀’이었던 나는 취업과 관련된 책을 만드는 일을 했다. 나의 생각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장이 쓰라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들었다. 책이 출판되어 편집자에 내 이름이 올랐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아까운 나무를 베어다가 내가 쓰레기를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충무로 뒷골목을 다니며 샘플을 모으고 인쇄소에서 밤새 표지갈이를 하던 시간은 분명 뜨거웠다. 내가 원하는 책은 아니었지만 어떤 누군가에게는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랐다.




그 이후로 나는 글 쓰는 삶에서 멀어졌다. 가까스로 졸업한 전공과목이 결국 나를 먹여 살리지도 못했으니 스무 살의 선택은 실패였음이 확실하다. 엄마가 투자한 그 많은 학원비는 또 어떻고. (엄마 죄송해요)

다만 도서관은 여전히 애정하여, 새로운 주거지를 선택할 때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있는지를 확인한다. 자주 가지 못하더라도 그곳에 책더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니 사실은 사서가 천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후, 평범한 -글을 쓰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도 가끔은 머릿속이 타자기처럼 움직여 글을 쏟아내곤 했다. 그것들은 구름과도 같아서 찰나에 사라지는 것들이었다. 나는 그것을 붙잡을 여유도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사라져 간 문장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것들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쟁이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애써 외면하고 살아간 지 이십여 년 만에.

과거의 그 예언이 맞다면 좋겠다고 간절히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쓰는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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