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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쉬는 돌 Jul 31. 2024

목욕하는 사람

나는 프로 목욕탕러다




나는 프로 목욕탕러다.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경력만 해도 이십여 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경력'이라는 것은 '월 이용권'을 이용하며 본격적으로 목욕탕을 드나든 것을 시작으로 한다. (물론 나의 생물학적 성별이 여자이므로, 이 글은 여탕을 바라본 편향적인 시각이라는 점을 참고 바란다.)




사우나실에는 강한 텃세가 있다. 그들은 각자 나름의 자리가 있고 서열이 있으며 규칙도 있다. 주류(라고 칭해보기로 한다)들은 장비도 남다르다. 땀을 빼기 위한 비닐 천, 모자, 방석, 텀블러 등이 기본이고, 손에 쏙 들어오는 문어모양의 마사지기나 비장의 소금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소금은 수입산일 경우 더욱 이목이 집중되며 주류들끼리 은밀히 나누어 배에 문지르곤 한다. 나는 몇 년간 이런 목욕탕의 주류 대열에 합류한 적이 있다. (쓰고 나서 보니 마치 주먹의 세계에 발을 담근 적 있는 것처럼 비장해졌다.) 다름 아닌 나의 엄마가 주류에서도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수능이 끝나고 대학과 직장을 다닐 때, 나는 저녁 시간을 종종 목욕탕에서 엄마와 보냈다. 하루 일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엄마에게 '집에 감'문자를 보낸다. 그러면 어김없이 '목욕탕'이라는 답장이 온다. 목욕탕에서 나는 결제를 하지 않는다. 그저 얼굴만 쑥 내밀면 프리패스다. 데스크 아주머니의 끄덕거림만 확인하면 된다. 보았는가? 주류의 당당함을!


엄마는 목욕탕의 정기권을 끊어 사용하셨다. 30장, 50장 묶음으로 이용권을 구입하면 정가의 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얼굴도장을 찍고 우선 들어가면 나중에 나올 때 엄마가 내 몫의 이용권 한 장을 데스크 아주머니께 지불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재미로 만든 주류니 비주류니 하는 말인거지 사실은 그냥 동네장사 단골이니까 가능한 정서였다.


탕에 들어가면 엄마의 친구인 주류 아주머니들이 나를 반긴다. 엄마와 다정히 붙어 다니며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는 젊은 아가씨를 모두 다 예뻐해 주셨다. 당시에는 예쁘다는 말이 빈말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엄마와 같이 목욕 다니는 딸들이 그렇게 예쁠 수 없다.




남탕은 그렇지 않다고 들었는데, 여탕에 들어갈 때는 수건을 두 장만 준다. 더 사용하려면 추가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남탕처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하면 여자들이 너무 많은 수건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의 경우에는 사우나실을 많이 이용하므로 머리를 감쌀 수건이 한 장 필요하고, 공공장소이므로 깔고 앉을 매트 대용으로 한 장을 사용한다. 그러다 보면 수건은 젖게 마련이라 마지막에 닦고 나올 마른 수건 한 장이 더 필요하다.


주류들은 매점 안쪽에 쌓여 있는 수건을 더 쓸 수 있었다. 매점 아주머니와 응응 그래그래 눈만 마주치면 수건 한두 장쯤은 양해해 주시는 것이다. 그렇다고 열 장씩 갖다 쓰게 되지도 않던데. 부디 여탕에도 자유롭게 수건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시면 좋겠다. 최소한 세 장이라도!




대부분의 목욕탕에는 쑥방, 옥방, 소금방, 황토방 등의 이름을 가진 사우나실이 있게 마련이다. 이 또한 재미있는 것이, 언제나 황토방에만 사람이 가득하고 나머지는 거의 텅텅 비어있다시피 한다. 마치 대기줄이 있는 인기 있는 식당 옆에 장사가 잘 안 되는 한적한 식당인 것 같은 모양새다.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심리인지 모르겠으나 나도 황토방을 주로 이용하다가 문득 왜 소금방에는 사람이 없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 들어가 보았다. 처음에는 아무도 없이 조용한 그곳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누워서 땀을 빼니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금방 왠지 서운해졌다. 저 옆방에서 나만 빼고(?) 뭔가 재미있거나 유용한 이야기들이 오갈 것 같은 조급함도 들었다. 슬쩍 소금방을 벗어나 복작복작한 황토방에 굳이 끼여 앉는다.(이럴 거면 다른 방을 줄이고 황토방을 좀 크게 만들면 좋겠다)




결혼 후 나는 남편의 직장을 따라 먼 도시로 가게 되었고, 엄마도 지방 소도시로 귀촌하시면서 우리의 화려했던 목욕탕 시절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낳은 아이를 키우는 동안은 목욕은커녕 생리적 현상 해결조차 사치로 느껴지는 시기를 지나왔다.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된 지금, 가끔 목욕탕에 놀러 가면 이제는 아이들 걱정 없이 아빠는 한숨 졸기도 한단다. 덩달아 나도 마음이 편해져서 사우나를 즐긴다. 주류에서는 벗어나 이방인처럼 한쪽 구석에 얌전히 있다가 나오지만.


얼마 전에도 아이들의 성화에 목욕탕을 갔다. 예의 그 황토방으로 가서 비주류 구역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침 주류들끼리 눈밑애교살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어서 안 듣는 척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너 살 많이 빠졌다’에서 시작된 대화는 ‘살 빠지면서 애교살이 다 빠져 늙어 보인다’를 거쳐 ‘어느 병원이 애교살 수술을 잘하더라’로 옮겨갔다. 마지막에 그중 한 명이 앞에 앉은 사람에게 말했다. “너는 정말 애교살이 예전 같으면 이십대로 보일 텐데.”


이때 자칫하면 그분의 눈 밑을 들여다볼 뻔했다. 정말 애교살만 있으면 이십대로 보일는지 궁금해서. 이성의 끈을 잘 잡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동참하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내가 아직도 주류라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잘못 안면을 트면 나는 언제든 그 주류의 막내가 될 수도 있다. 한 번 합류하면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다.(끝까지 주먹의 세계인 척해본다.)




요즘은 목욕탕에 갈 때마다 엄마가 안 계신 옆자리가 허전하다. 그저 곁에 앉아 손톱이 깨졌네, 여드름이 났네 하며 시답지 않은 대화를 나누던 때가 그립다. 아들만 둘 있으니 남자 셋과 입구에서 헤어지고 나면 적적하여 황토탕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까지 해 보았다. 혼자서 여탕으로 향하는 나를 아련하게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에 메롱을 날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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