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나의 두 번째 퇴사 이야기 1
본격적으로 이직 준비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더 큰 회사로 옮겨갈 수 있었다.
두번째 회사는 균형이 잘 잡힌 곳이었다. 적당한 월급, 적당한 업무량, 그리고 좋은 사람들.
이전 회사보다 팀 분위기도 훨씬 좋았고, 업무 방식이 체계적이어서 일적으로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복지는 거의 없다싶이했다. 건강검진 휴가조차 없을 정도였고, 근무 형태가 9 to 6 사무실 근무로 고정되어있었으며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이직한 것이었는데도 급여나 복지 수준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 실망스러운 점도 있었다.
중소기업 다닐 때 받았던 세금 감면 혜택을 받지 못해서 실제로 수령하는 월급이 오히려 더 줄어들었고, 회사 위치가 좋지 않아 출퇴근 피로도가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분명 집도 회사도 서울이었지만 출퇴근에만 하루 3시간을 썼다.
하루의 12.5%를 길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그것도 사람이 제일 붐비는 출퇴근 시간에 말이다.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장 먼저 포기한 것은 운동이었다.
그리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저녁이 있는 삶'을 외쳤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6시 땡! 치자마자 퇴근하는 직원이었지만, 집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다 치우고 나면 이미 8시 반이었다.
다음날 출근을 위해선 11시에 누워야했으니 하루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시간 반인 셈이었다.
워라밸을 챙겨도 이정도인데 회사엔 여전히 야근을 좋게 보는 문화가 존재했다.
주어진 시간에 일을 다 끝내고 정시에 퇴근하는 직원보다 굳이 일이 없어도 1시간씩 더 앉아서 뭐라도 보고 퇴근하는 직원을 더 좋게보는 사람들이 있었고, 건너건너 야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말도 종종 들었다.
나는 '야근이 죽어도 싫다! 워라밸이 제일 중요하다!'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이유없는 야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회사라는 곳은 개인 의지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적다보니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를 강요하는 상사를 만나게 되면, 그때는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늘 불안했다.
월급 문제도 컸다. 월급은 안정적이었지만 영원한 박스권에 갇힌 느낌이었다.
이대로라면 그냥 2~3년 자격증을 준비해서 초봉이 높은 직군으로 다시 시작하는게 더 낫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었고, 직장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은 점점 깊어졌다. 모두 다 알고 선택한 이직이었는데도 '이대로 괜찮을까?' 라는 생각이 매일들었으니 직장인에게 돈과 워라밸은 생각보다 더 중요했던 것 같다.
이렇게 회의감이 쌓이던 와중, 또 다른 걱정이 찾아왔다. 바로 내 건강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저녁을 먹고나면 배가 부푸는 증상이 생겼다. 양을 많이 먹지 않아도 꼭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서 몇 달동안 소화제를 달고살았다. 멀쩡하다가도 새벽에 갑자기 장이 꼬이는 느낌이 들면서 식은땀을 줄줄 흘릴 정도의 통증을 겪은 날들도 적지 않았다.
뭔가 문제가 생긴게 분명해 보여 비싼 건강검진도 받아봤지만 별 문제없다는 병원의 진단.
근데 이게 더 무서운거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데 나는 아픈 상황.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많이들 아프다는데.
걱정은 쌓이고, 몸까지 신호를 보내오자 직장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의문이 더 커졌다.
직장인으로 사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정적인거라는데,
나에겐 직장인의 안정적인 삶 자체가 불안정이었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미래에도 이 월급으로 괜찮을지 걱정이었고, 예상못한 상황이 생기면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고, 갑자기 아파서 회사를 못 나가게되면 어떻게 살아야할지 걱정이었다. 걱정이 이렇게 많은데 이걸 안정적인 삶이라고 부를 순 없었다.
유튜브라는 매체가 커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병을 가감없이 보여주기 시작했고, 몇몇 환자들은 정말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까지 보여줬다.
영상 내용은 대부분 아픈 와중에도 힘을 내고, 희망을 가지고, 시간을 가치있게 보내는 내용이었지만 그걸 보는 나는 왠지 모르게 무기력해져갔다.
내가 이렇게 살다가 병에 걸리면? 땅이 꺼져서 죽으면? 아쉬울게 없을까? (물론 어떻게 죽어도 후회는 남겠지만) 이 순간을 이렇게 보낸 것에 대해 후회가 없겠는가? 라는 물음에 내 답은 언제나 NO였다.
이 글은 인스타툰으로 연재했던 시리즈 「사람 운명은 정해져있다는 걸 믿게된 이유」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퇴사'라는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다소 무거운 주제를 인스타툰 형식으로 2달간 연재했었고, 많은 분들의 공감 속에 감사하게도 누적 조회수 32만을 달성하며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브런치에는 만화에 다 담지 못했던 경험과 고민, 감정들, 말풍선 밖의 이야기를 조금 더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어요.
「사람 운명은 정해져있다는 걸 믿게된 이유」시리즈와 일상 만화들은 인스타 계정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jju_purin (클릭시 인스타로 이동)
→ 이번 화는 사람 운명은 정해져있다는 걸 믿게된 이유에 연재되지 않은 내용을 포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