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도대로 내 길을 걷는게 제일 어려워

#5 교환학생 시절 이야기 2

by 쭈프린

교환학생을 하면서 나는 주말과 공강을 이용해 열심히도 놀러다녔다.

한국의 대학은 약 3달 반, 15주 동안 매주 수업을 진행하는 시스템이었지만, 내가 교환학생을 간 학교는 수업마다 수업 기간이 달랐기 때문에 수업 시작일과 종료일만 잘 맞추면 중간중간 1주~2주를 통째로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었다.

저렴한 항공권을 찾아서, 저렴한 항공권이 없으면 야간 버스를 타가며 주변 나라를 여행했다.

보통은 같이 교환학생을 하던 친구와 여행을 다니곤 했지만 가끔은 혼자 여행을 다녀야할 때도 있었는데 난 그럴때면 대부분 동행을 구해서 같이 다니곤 했다.

유럽은 돈 아껴가며 1달 이상 중장기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동행 문화가 보편적이었다.

사람들이 동행을 구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혼자 다니기 심심하거나, 사람을 모아서 음식점에서 다양한 메뉴를 시켜먹고 싶어서, 아니면 그냥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등등.

같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어쩌다 만난 인연이 동행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동행은 사회에서 만나는 인연과는 달리 일회성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아무리 마음이 잘 맞아도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그 사람을 만나게될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그래서인지 다들 대나무 숲에 있는 것 마냥 마음편하게 저마다 본인의 인생 얘기를 했다.

그 덕에 나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인간은 원래 끼리끼리 살아가는 동물이기 때문에, 동행을 통해 랜덤으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정말 신기하고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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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암묵적으로 정해진 삶의 속도가 있다.


20살 혹은 21살에 대학에 들어가 4년동안 대학을 다닌다. 휴학은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정도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 물론 휴학엔 목적이 있어야 한다. 자격증 공부를 하거나, 어학연수, 워킹홀리데이, 인턴쉽 등으로 알차게 시간을 보내야한다.

그럼 23~25살 즈음엔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한다. 회사에 다니면서 약 3년 정도는 결혼 자금을 모으고, 30대 초반이 되면 완전히 자리를 잡았음을 알리는 결혼을 한다. 그 후도 뻔하다. 돈을 모으고 재테크를 하고, 집을 사고, 아기를 낳고 키운다. 듣기만해도 빡빡하지만 다들 그렇게 산다.

사람들은 다 같이 걸어가고 있는 한국인 삶의 속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만한 사유가 있어야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의대 가기, 전문직 시험 붙기 정도의 상당한 아웃풋이 기대된다면 삶의 속도를 조금 미룰 수 있었고, 혹시라도 뭔가에 도전하다가 실패하면 시간 낭비로 치부됐다.


그렇지만 내가 프랑스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으면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자신의 속도대로 다양한 길을 가고 있었다. 방향도 속도도 제각각이었다. 전공으로 규정할 수 없는 길도 존재했다.

그리고 그 길에 확신만 있다면 다른 사람의 시선은 아무래도 상관없는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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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깨달았을 즈음 나는 작은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한인민박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름 디테일하게 구상했었다. 엄마랑 아빠를 데리고와서 아빠는 청소를 담당하고, 엄마는 조식을 담당하고.. 나는 예약 관리와 마케팅을 담당하고, 미래에 남편될 사람은 스냅작가를 하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여태까지 생각해온 '일반적인 삶'과는 먼 얘기지만, 대학이니 취업이니 대외적인 이름을 다 떠나서 누가 나에게 넌 어떻게 살고 싶어? 라고 물어본다면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건 해외에서 한인민박하면서 사는 내 모습이었다.


그 꿈을 이룰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는 꿈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대신, 한국에 돌아가면 남 시선에 눈치보지 말고 내 속도대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지만 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현실을 살아야했다.

교환학생에서 굉장한 강단을 가지고 돌아온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3학년 1학기, 내가 프랑스에서 신나게 놀고 온 사이 다른 친구들은 자격증도 따고, 대외활동도 하고, 부족한 공부도 하고 가치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4학년 2학기에 취업을 하려면 인턴 경험이 필요했고, 나한텐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이 글은 인스타툰으로 연재했던 시리즈 「사람 운명은 정해져있다는 걸 믿게된 이유」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퇴사'라는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다소 무거운 주제를 인스타툰 형식으로 2달간 연재했었고, 많은 분들의 공감 속에 감사하게도 누적 조회수 32만을 달성하며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브런치에는 만화에 다 담지 못했던 경험과 고민, 감정들, 말풍선 밖의 이야기를 조금 더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어요.

「사람 운명은 정해져있다는 걸 믿게된 이유」시리즈와 일상 만화들은 인스타 계정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jju_purin (클릭시 인스타로 이동)

→ 이번 화는 사람 운명은 정해져있다는 걸 믿게된 이유 7편 내용을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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