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하는 사랑
5. 혼자 하는 여행(5)
- 혼자하는 사랑
혼자 여행을 하면서 상상 속에서 연애를 한다. 상대는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일 때도 있고 한 번도 만나 보지 않은 유명한 사람, 아니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가사가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며 길을 걸을 때,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갈 때 상상 속의 사람과 많은 이야기들을 한다. 어렸을 적 기억을 되살려 이야기하기도 하고 길거리에 있는 작은 것들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혼자만 가지고 있던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좋은 기억보다 서글펐던 일, 아쉬웠던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혼자 있으면서 말도 안 되는 망상에 빠지거나 머릿속이 너무 시끄러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래서 자꾸 바닥으로 가라앉을 때 상상 속에 연애를 시작한다. 그러는 동안에는 지나치는 꼬투리 이야기가 튀어나가지 않고 한 가지로 풀어지게 한다
그럴때 나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들이 다시 생각나기도 한다. 어릴 때 생각이 나기도 하고 학교 다닐 때 알던 사람들 생각하기도 한다. 항상 팔베개하고 뉘어놓고 옛날이야기를 해주시던 할머니 생각도 한다.
어떤 때는 그런 생각들에 혼자 민망해 하기도 한다. 그 나이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지 하는 것도 있다. 그때 좋아하던 것들, 좋아하던 음악이 생각나기도 한다. 생각나는 어린시절 얘기에는 40살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엄마한테 무지하게 혼났던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때 였던 것 같다. 그때는 40이라는 나이가 무척 많아 보여서 그렇게 말한건데 엄마는 무지 화를 내시면 “그럼 엄마는 벌써 죽었어야겠네 하셨었다.” 그나이엔 엄마가 40살이 넘었을 꺼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때였다. 그리곤 이어서 영화[정사]의 서현의 말을 생각해 낸다
“40이라는 나이는 생각보다 빨리와요”
그렇게 생각나는 일들을 혼자 종알종알 이야기 한다. 혼자 웃기도 한다. 생각이 이어지는 때도 있지만 방향 모르게 튀는 때도 많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동안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옆에 있었나 하는 것을 알게 한다. 한때이지만 사랑했던 사람들, 사랑을 주었던 사람들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삶에 힘이 되어 준다.
얼마 전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졌다가 다시 연락이 된 한 친구가 SNS로 어떤 작가의 글을 보내왔다. 20대에 친구를 만난 시간을 후회한다는 글이었다. 같은 글을 반복해서 읽고 나서 난 그 친구에게 답장을 보냈다
이 글을 쓴 그 작가는 20대에 어떤 사람들을 만났던 걸까? 그 친구는 내가 모르는 지난 1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을 만났을까?
지나간 시간 속에 난 참 많은 것을 낭비하며 살았던 것 같다.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무엇보다도 감정적으로. 그러나 시간이 지나 보니 생각나는 것은 그 시절, 그 시간에 만났던 “사람들”인 것 같다. 한 시절을 같이 보낸 사람들, 나와는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또는 나의 이기심이나 오해로 헤어진 그 사람들만이 내가 지내온 시간에 대한 흔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로 창피한 기억도 있다.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도 있다. 그래도 그런 것들이 그때 그 나이에, 그 시간에 나를 지탱해 준 힘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그 사람들이 때때로 그립다. 감정을 낭비하는 것이 싫다고 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어느 한순간의 감정도 낭비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매 순간순간 감정은 나의 온몸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그렇게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뿐이었다.
나이를 먹는다고 성숙되어지는 것은 나이가 어릴 때에만 가능한 일 인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오히려 성숙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욕심도 많아지고 참을성은 줄어들어 짜증도 많아지고 잔소리도 많아진다. 괜히 혼자 훌쩍 거리는 일도 생기고 누군가가 무작정 생각나기도 한다. 살아 온 시간이 많다는 것이 꼭 성숙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나이만큼 쌓여가는 경험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내 것으로 남아 있는 것들이다.
여행을 하면서 우연히 익숙한 사람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 어제도 그제도 아닌 한 십 년쯤 전에 알던 사람. 우연히 만나 어색하게 인사 한 번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십 년이 지나도 아직 기억하고 있었음을, 같은 공간을 서로 다른 시각에 지나가고 있었음을 아련하게 느껴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