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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내기

by 옆집사람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가 있다. 다른 사람보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거라고들 했지만 엄마의 교육과 사랑으로 성장하여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별로 특별한 것 없는 영웅주의 영화였다는 생각이지만 내용 중 박장대소하게 만든 장면이 있다. 미국에서 일어난 주요한 사건마다 포레스트가 함께 있는 장면이다. 사진 합성으로 만들어진 장면이었다.

드러나길 바라든 드러나지 않길 바라든 상관없이 자신이 중요한 역할이었으면 하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바람인 것 같다. 그래서 소외됐다고 생각되는 순간의 반응은 대게 2가지로 나타나는 것 같다. 그 일에 대한 모든 것에서 스스로를 격리시키거나 반대로 다시 중심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거나. 하지만 실상 밀려난 중심에서는 더 멀어질 뿐이다. 요즘 말로는 인싸, 아싸라고 한단다. 인싸는 주목받는 위치이고 아싸라고 하면 마치 외톨이인 것처럼 얘기한다.

“관종” 타인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병적인 수준에 이른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의 뜻을 생각하다가 문득 우리 모두 관종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병적인 상태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부모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직장에서는 상사와 동료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고 음악가는 음악으로 화가는 그림으로 작가들은 글로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KTX가 아닌 열차를 타고 가다 보면 가끔 이런 안내방송을 듣게 된다

“우리 열차는 KTX에 레일을 비켜주기 위해 본 역에서 3분간 정차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열차를 타고 지방을 다니는 일을 했던 적이 있다.

무궁화호를 타면 2시간 10분, 새마을호를 타면 1시간 40분이 걸렸고 KTX를 타면 50분이면 갈 수 있었지만 비용이 2배였고 돈을 2배를 내면 대우도 2배로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었는지 전에는 별로 불친절하게 생각되지 않았던 부분에도 이의를 제기했고 급기야 전에 없이 큰소리로 항의하는 일이 생겼다.

내가 지불하는 것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것은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당연한 것 일 수도 있다. 그것이 능력이든 돈이든 내가 얼마를 냈는데, 내가 누군데, 내가 어떤 능력을 가졌는데 하는 것으로 대우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든 기차든 잘 나가는 것을 위해 길을 비켜줘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생기는 걸까?

치열하게 산다는 것. 서점에 가보면 쌓여 있는 책들이 거의 비슷한 디자인에 비슷한 제목일 때가 있다. 요새는 위안에 대한, 힐링에 대한 내용이 많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라는 내용이다. 한때는 성공전략 같은 책이 가득했었다. 치열하게 산다는 것이 삶에 목표가 되어 지쳐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고 그러니 너무 치열하게 살지 말자고 즐기면서 천천히 살자고 하는 같다.

지난 태풍에도 견뎌낸 마당의 감나무 가지가 제 열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졌다. 내어 놓아야 할 것들을 내려놓지 못한 까닭이다.

언제나 스스로를 부러뜨리는 것은 바깥에서 부는 강풍이 아니라 제 스스로의 욕심인 것을 안다면

비록 현실의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내 삶의 중심은 나 인 것을 안다면 굳이 무리해서 인싸가 되려고 하지 않아도 될 것 같. 눈에 띄는 역할이 아니었어도 그 순간 나의 역할은 분명히 없으면 안 되는 다른 하나의 역할이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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