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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하는 여행(1)

여행가방 싸기

by 옆집사람


BMW족이라는 말이 있다. 외제차인 BMW를 타는 사람들은 말하는 것이 아니고 버스(BUS), 전철(Metro), 걷기(walk)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뚜벅이”

직장과 집이 멀어 왕복 3시간 정도의 시간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나는 집에서 나갈 때 혹시 필요할지도 모르는 물건들을 가방에 넣고 나간다. 휴지. 물휴지, 반창고, 감기약, 소화제, 진통제, 우산 등등. 사무실 사물함에 두고 다녀도 되는 물건들도 가방에 있어야 마음이 편해진다. 사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도 그 몇 시간 안에 필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도 여러 가지 걱정들로 가지고 다니는 물건들은 늘어나기만 했다.

‘갑자기 배가 아프면 어쩌지?’ ‘ 갑자기 넘어져서 상처가 나면 어쩌지?’ ‘머리가 아프면 약을 먹어야 하는데’ ‘비가 오면 어쩌지?’ 이런 생각들이 가방 속에 있는 물건을 빼놓지 못하게 해서 가방은 언제나 돌덩이를 넣어가지고 다니는 것처럼 무거웠다.

평상시에도 이러하니 짧은 기간이라도 여행을 가려고 가방을 챙길 때는 필요한 물건의 양이 어마어마해진다. 온갖 상비약은 다 챙겨야 하고 휴지나 물휴지도 몇 개씩 챙겨 넣는다. 갈아입을 옷도 신발도 여유 있게 챙겨 넣어야 마음이 놓였다. 여행 가방이라는 것이 크기가 정해져 있으니 원하는 것을 다 가지고 갈 수는 없어서 짐을 싸면서 몇 번씩 꺼냈다 넣었다는 반복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가방이 터지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여행지에 가서는 필요하지 않은 것이 많았고 괜히 들고 다니느라 무거워서 고생만 했을 뿐 돌아와 가방을 풀면서 나오는 쓰지 않은 채 찌그러진 물건들을 보며 짐을 잘못 싼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짐을 줄여보기로 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의 삼분의 이만 가져가기로 시작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면 챙기지 않았다. 여행 가방이 가벼워지면서 가지고 다니기가 쉬워졌고 부족하거나 불편함이 많지 않았다.

어느 날 여행지 호텔방에서 열어놓은 가방을 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는데도 저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의 대부분이 어쩌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을 위한 것이라면 굳이 미리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되는 것일 것 아닐까 하는 생각. 작은 여행가방 하나에 들어갈 만큼의 짐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그만큼으로도 되는데 미리 걱정하거나 과시하고 싶어서 가지고 있는 것이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은 아닐까?

어쩌면 평생을 무엇을 갖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것만 생각하며 사는 건지 모른다. 남보다 하나 더 갖고 싶어서, 어제보다 하나 더 갖고 싶어서 노력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갖게 되면 성공했다고 생각했고 갖지 못하면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정말 그것이 원했던 것인지 아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그래서 가진 것보다 놓친 것에 대한 미련이 훨씬 많았다.

인터넷에 [당신이 버려야 하는 물건 100가지]라는 글이 있다. 버리는 일이 잘 안 되면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보란다. 버려야 할 것, 지인에게 줄 것, 기부할 것을 나누어 정리를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집 정리를 해주는 티브이 프로그램에서는 물건에 대해 기념하고 싶으면 사진을 찍어 보관하는 것이 좋다는 제언을 하기도 한다.

추억이라는 것이 원래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이든 아련함 같은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어서 좋은 사람과 같이 갔던 좋은 장소, 좋은 기억이 남아 있는 물건 같은 것에 의미를 주게 되고 그래서 물건에 더 집착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이사를 자주 다닌 한 친구는 이삿짐을 다음 이사 때까지 못 푸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땐 과감히 그 짐을 버린단다. 2년간 필요하지 않았다면 그건 없어도 되는 물건이라고.

지난 태풍에도 견뎌낸 감나무 가지가 제 열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러졌다. 나무도 내어 놓아야 할 것들을 내려놓지 못한 까닭이다. 언제나 스스로를 부러뜨리는 것은 바깥에서 부는 강풍이 아니라 제 스스로의 욕심인 것 같다.

하나씩 비워가는 것을 해보고 싶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가지고 있었던 것들, 과시하고 싶어서 가지고 있었던 것들, 갖고 있으면 성공했다고 느낄 수 있어서 가지고 있었던 것들, 나를 확인하고 싶어서 가지고 있었던 것들 그런 것들을 목록을 써서 꼭 필요한 것과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여 정리해 봐야 할 것 같다. 쉽지 않은 일 일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나씩 비워 가다 보면 꼭 필요한 것을 알게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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