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이정표
난 영화나 드라마의 스포일러를 좋아한다. 심지어 사람들이 질색하는 미스터리 장르에서도 결말에 대해 미리 알고 보는 것이 좋다. 결말을 알지 못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내용에 너무 빠지거나 원하는 방향으로 진전되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에, 또 미스터리 장르에서는 불안감 때문에 그 안에서 보여주는 섬세한 내용들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결말을 아는 영화나 드라마를 반복해서 보기를 좋아한다. 그리곤 항상 해피엔딩을 기대한다. 지금은 조금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결국은 행복해진다는 결말을 알고 보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순간순간의 일어나는 일에 더 공감하게 되어서 좋다. 곧 행복해질 것이라는 것을 아니까 더 이상 마음 졸리는 불안감이 없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우리 살아가는 일에도 누군가 미리 스포일러를 알려준다면 어떨까? 알고 있는 결말을 위해 더 열심히 살게 될지 아니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에 대해 포기하게 될지 알 수는 없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하루를 하루로 살 수 있는 것일지 아니면 알고 산다면 좀 더 섬세하게 하루를 살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일본 시코쿠에는 헨로 미치(四国おへん路)라는 순례길이 있다.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고승인 홍법대사(弘法大師)라는 분이 와카야마현 고야산의 오쿠노인(Okunoin , 奥之院)이라는 곳을 출발해서 세토내해를 거쳐 시코쿠의 88개의 사찰을 다닌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천이백 년간 이어져 온 불교 성지 순례길이다. 홍법대사가 다닌 길을 따라 번호가 붙은 88개의 절을 순서대로 돌아 1번 절로 돌아오는 1,200킬로미터의 장거리 순례길이다. 일본인들에게는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은 길이고 88개 사찰의 순례를 마치면 업이 소멸된다고 믿는다고 한다. 헨로들이 가는 길에는 동행 이인(同行二人)이라는 표지가 있는데 어렵고 힘든 길에는 항상 홍법대사가 같이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우연하게 알게 되어 처음 가게 된 그때에는 우리나라에서 헨로미치의 자료를 구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하치주 하치 카쇼(八十八ヶ所巡礼)라는 것으로 겨우 찾아낸 것이 일본의 시코쿠라는 곳이라는 것뿐이었고 무조건 가보자고 계획도 제대로 세우지 않고 1번 사찰인 있는 도쿠시마(Tokushima, 德島)로 갔다. 그곳에 헨로미치의 시작인 1번 사찰이 있고 거기에 가면 한국어로 된 자료가 있다는 말만 믿고 나선 길이었다. 실제로 가보니 한국어 자료는 없었고 일본어 자료도 많지 않아서 내가 가진 것은 론리 프래닛이라고 하는 여행안내서에 나온 몇 장이 전부였다. 그 자료에는 각 현에 있는 사찰 이름이 나와 있는 것이 다였고 시코쿠의 호텔에서 얻은 일본어 자료 몇 장를 들고 나선 그 길에서 표지판만큼 반가운 것은 없었다.
만다라지(Mandara-ji Temple, 曼荼羅寺)까지 3.2km라는 표지가 되어 있는 곳을 따라 산길로 들어섰다. 한쪽은 벼랑이고 한쪽은 하늘을 가리는 나무가 울창한 산속으로 들어서면서 한 10m 가면 큰 길이 나오겠지 생각했는데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울창한 나무 숲이 끝없이 이어졌다. 쓰러져 있는 나무도 있고 하늘이 가려져 있는 숲은 지나면서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길을 잃으면 어쩌지? 겁을 내는 순간 저 앞 나무 가지에 헨로 길이라는 표지가 걸려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좁은 산길을 걸어가면 후드득 까마귀 나는 소리가 들리고 또 더럭 겁이 난다..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아까 표지를 잘 못 본 것은 아닐까? 혼자 어쩔 줄 몰라하면 또 저 앞 나무 가지에 길 표시가 걸려 있었다. 그런 산길을 따라 내려왔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무조건 앞으로 가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길이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난 그 길이 몇 시간이나 되는 것 같이 느껴졌었다. 산 길 끝에 농가가 보이고 저 멀리 국도가 보이자 겨우 안심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우리가 가는 길은 혼자 가는 길일뿐이다. 돌아갈 길은 어차피 처음부터 없었다. 그래서 불안해 하지만 그렇게 불안해하는 내게 나무에 표지를 걸어놓듯 길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난 불안해하고 길을 잃어버릴까 봐 걱정한다. 완전히 믿으면 되는데, 내가 변덕을 부리면서 믿지 못한다.
표지판을 만나는 것은 맞는 길로 가고 있다는 안심과 가고자 하는 다음 사찰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동시에 준다. 갈림길에서의 안내표지판도 좋지만 외길의 안내표지판은 처음부터 잘 못 들어선 길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없애준다. 표지 하나만을 믿고 머릿속에는 단지 한 가지, 다음번 사찰을 제대로 찾아가야 한다는 것만 생각하며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상황.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모르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나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순간이다.
가야 하는 목적지가 있고 지도가 있다고 해도 낯선 길을 나서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지도를 보고 가면서도 길을 잃고 다른 방향으로 가기서 헤매는 일이 많은데 살아간다는 것은 정확한 목적지를 가지고 있을 수도 없고 그래서 처음부터 목적지를 찾아가는 길을 알 수 없다. 그리고 순간순간 삶의 방향을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이라는 것은 언제나 51대 49이어서 어떤 것에도 정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 선택이 불안하고 길을 잃어버릴까 봐 걱정한다. 그래서 후회를 하고 그래서 아쉬워한다.
가야 하는 길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알려준다고 해도 같은 길을 갈 수 없고 알려준 길로 가도 같은 목적지를 갈 수 없는 것이 각자의 몫이다.
“눈 쌓인 데를 밟아라. 그럼 안 미끄러진다." 눈길이 조금만 미끄러워도 잘 걷지 못하는 나를 뒤에 세우고 엄마는 앞장서 가시면서 말씀하셨다. 다 큰 딸의 새벽 출근 길이 못내 걱정스러워하며 엄마는 앞서 걸어가셨다.
" 이 길로, 내가 가는 길로 디디면 안 미끄럽다. 눈 있는 데로 디뎌라"
눈 쌓인 새벽길을 걷던 그때처럼 앞서 걸어주는 발걸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혜를 얻었어야 하는 나이에 아직도 헤매기만 하는 시간 속에 방향을 알려주는 표시. 그래서 이정표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