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밥 먹는 것의 즐거움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고 한다. 가장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 집이라는 의미이다. 여행을 다니면 좋은 것도 많이 있지만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일은 해결해야 하는 일이 되곤 한다. 집에 있을 때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그리고 그것이 쉽지만은 않아서 생긴 말인 것 같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여행 중에 먹는 것을 해결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어떤 사람은 꼭 한식만을 고집하기도 하고 음식을 가리지 않아 아무것이나 잘 먹는 사람도 외지의 음식이 맞지 않아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향이 강한 음식에는 유독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여행의 기억을 나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지역을 얘기하면 경치가 좋았다가 아니라 음식이 너무 힘들었다는 얘기만 하기도 한다.
하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아무리 좋은 구경이라도 밥을 든든히 먹어야 좋게 보고 다닐 수 있는 일이지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여행을 갈 때 특히 해외로 여행을 갈 때면 음식을 많이 싸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한식이 생각날 때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가지고 다니기도 불편하지 않은 반찬들, 김이나 볶은 김치, 비빔 고추장, 컵라면 등이고 여행카페에는 컵라면이나 이런 반찬들을 어떻게 가지고 다니면 좋은지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기도 한다.
여행을 다니면서는 주로 그 지역의 음식 먹기를 좋아하지만 주로 혼자 여행을 다니는 나는 맛 집을 가기는 어렵다. 맛집 찾아다니는 것을 여행의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많고 몇 시간씩 기다리다가 먹고 왔다든지 한 달 전, 두 달 전에 예약을 해서 갔다 왔다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많고 어떤 여행사는 일부러 맛집만 다니는 것을 패키지로 만들어 하루에 몇 곳의 맛집을 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직장생활 중에 짧은 휴가로 가는 여행이라 시간에 쫓기며 여행을 하다 보니 여행지에서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고 가 볼 곳도 많아서 맛집을 일부러 찾아가기에는 시간이 항상 충분하지 않았다.
물론 개인적으로 일부러 맛집을 찾아가는데 시간 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음식의 경우에는 그 지역이 아니면 먹어 볼 수 없는 것도 있어서 “그곳에서 그 음식 먹어봤어?”라고 물으면 항상 “아니” 일 수밖에 없었는데 터어키 이스탄불의 고등어 샌드위치나 구마모토의 말고기 스테이크는 먹어보지 못한 것을 아직도 아쉬워하는 음식들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이 애잔하게 보여 "괜찮아" 위로를 해 줘야 하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 같다. 인터넷에 보면 혼밥을 어디까지 해봤냐는 식의 레벨을 정하기도 하는데 편의점에서 혼자 먹는 것이 낮은 레벨이고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고깃집, 횟집에서 혼밥 하는 것은 높은 레벨에 속한단다.
처음 혼밥을 했던 기억은 아주 오래전이다. 20대 중반쯤 지방에 사는 친구 집에 갔는데 막상 그 친구는 내가 온다는 것은 잊어버리고 외출을 해서 집에 없었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던 시절이 아니고 집전화도 없는 집이 많던 그런 때여서 편지로 주고받았던 약속을 잊어버렸던 것 같다. 편지라고 하는 것이 그 느낌이 주는 낭만과 달리 주고받는 데 걸리는 시간이 일주일 이상이다 보니 약속을 하고 답을 받고도 잊어버리기 쉬웠다. 어쩌면 그 약속이 너무 막연해서 언제 어느 날 우리 집에 놀러 오겠냐고 편지를 보냈고 그날 가겠다고 답장을 했지만 서로 보낸 것만 생각하고 그 답은 제대로 읽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친구는 시내에 나가고 없었고
지방의 중소도시 옆에 있는 작은 곳이어서 갈 곳이 없었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에도 교통편이 마땅치 않았고 그냥 시골 다방에서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해가 지고 배가 고파져서 찾아간 작은 동네의 중국집에서 여자 혼자 짜장면을 시키는 것에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쟨 누구려?” “걔네 집 친구래” “ 걔는 친구가 오는 줄 모르고 시내에 나갔다네” “ 시내 나갔으면 늦게나 올 텐데” 마을 사람들이 서로 잘하는 작은 동네였으니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소리들을 했었던 것 같다. 그 어색함 속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문득 생각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혼자 있겠구나. 나를 두고 수근 대는 소리를 뒤로 하고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지켜나가야겠구나’
지나치면서 하는 “밥 한번 먹자.” 이 말에 언제? 어디서?라고 묻는 사람은 없다. 밥 한번 먹자는 것이 그냥 인사말이라는 것을 서로 잘 알기 때문이다.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지 배고픔을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맺는 자리가 되는 것이고 공동체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서로에게 그만큼의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고 있는 것이고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또 하나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때때로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차라리 혼 밥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사람이 미워질 때 표현 중에 "밥 먹는 것만 봐도 화가 난다"라고 한다.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행동인데 밥을 먹고 있는 것만 봐도 화가 나고 미워진다는 얘기이다.
이런 사람과 같이 밥을 먹는 다고 서로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를 나눌 수 있을까? 같이 앉아 있는 자리가 어색하고 불편해지는 것을 아닐까? 술자리 모아 보면 인간관계 나타난다는 우스개 얘기처럼 서로 같이 있어 불편한 사이라면 맛있는 음식이라고 같이 느낄 수 있을까?
일본에 처음 여행 갔을 때 음식점이나 이자카야가 혼자서 밥을 먹기 좋게 인테리어 되어 있는 것에 놀랐는데 그곳에 각각 혼자서 먹고 마시고 있는 모습이 낯설기도 했지만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혼자 가서 밥을 먹든 술을 마시든 누구와 시간을 맞출 필요도 없고 장소를 의논할 필요도 없다. 어떤 음식을 먹을 건지 밥이 맛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시간을 얼마큼 써야 하는지 분위기가 서로의 마음에 들었는지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그냥 혼자서 즐기면 된다. 지금 있는 그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이 되면 되고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해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나같이 있으면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보다 나만의 세상에서 오롯이 혼자가 되어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 뒤에서 누군가가 수군거리든 말든 나를 지켜 내는 것이 나를 위한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