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2009년 개봉, 영국, 감독: 던컨존스
오랜만에 괜찮은 영화를 보았다. 2009년 개봉했던 던컨 존스 감독의 The Moon.
지금 <더 문>으로 검색하면 곧 개봉할 김용화 감독의 영화만 검색된다. 설경구, 김희애, 도경수가 주연이라는데 라인업만으로도 벌써 기대가 모아진다.
2009년 <더 문>을 검색하려면 영문으로 찾아야 자료가 겨우 나온다.
국내관객 1만 8천 명을 동원한 제작비 50만 달러의 초저예산 영화로 흥행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우주선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배경으로 1시간 30분의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 이만큼의 서사를 쓸 수 있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영화 중반까지 살짝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등장하는데 참을성 있게 지켜보다 보면 사건의 개연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일단 영화 자체에 등장하는 인물도 매우 제한적이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명의 등장인물로 이루어진다. 아! 엄밀히 따지면 샘 벨(샘 록웰)이라는 남자와 그와 함께 우주선에 있는 로봇 거티(목소리: 케빈 스페이스) 둘이다.
그는 인구폭증과 에너지 난에 허덕이는 미래의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설정되었다. 미래의 지구는 귀한 에너지 자원을 얻기 위해 달에서 클린 에너지인 헬륨-3를 채굴하는 데에 성공하고, 샘 벨은 이 에너지를 채굴하는 회사 '루나 인터스트리'에 다니는 3년 계약직 회사원으로 비용 절감을 위해 끝없는 고요 속 우주 한복판에서 3년간 로봇과 함께 상주하도록 되어있었다.
그는 곧 2주 후면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지구로 복귀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버티고 버틴다.
지구와의 실시간 직통 안테나는 고장이 난 상태로 버틴 지 오래라 본사와 주고받을 업무용 오더와 가족들이 보낸 영상 메시지는 녹화된 테이프로만 전달받을 수 있다. 실시간 화상 시스템이 없는 상황이다. 우주에서 에너지를 개발하는 데에 성공한 미래라면 뭔가 획기적으로 세상이 달라질 것만 같은데 지금보다도 더 답답한 고립무원 상태에 있는 주인공이 안타깝고 그의 외로움이 격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와중 샘은 기지 밖에서 일하다 불의의 사고를 겪게 되고 정신을 차려보니 우주선 안에 들어와 있다.
(뭔가 여기에서부터 이상하다! 싶은데 이 부분이 바로 반전이 시작되는 부분일 수 있다. )
그는 목숨이 위협받을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으나 빠르게 회복하고 지구로 돌아가는 시일이 늦어지지 않도록 할당된 일을 빨리 처리하고자 본사의 지시를 무리하게 불응하고 밖으로 나가 일을 하려고 한다. 억지로 밖으로 나간 그는 자신이 사고 났던 그 장소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누군가를 발견하고 심각한 부상을 입은 그를 기지로 데려와 거티에게 치료를 받게 한다.
혼란에 빠진 둘.
영화의 시점은 부상당한 샘으로 옮겨져 다시 전개된다.
그들은 서로 자신이 샘이라고 우기며 혼란에 빠지게 되고, 종국에는 자신들이 샘 벨의 복제인간(클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이 우주선 안에는 자신과 같은 클론들이 무한히 많이 만들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부상당한 샘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새로 태어난 샘이 지구에 갈 수 있도록 양보한다.
클론 샘은 지구로 돌아와 루나 인더스트리의 비윤리적인 범죄 사실을 클론으로서 폭로하고 인간의 삶을 사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비인간적인 '인간'들에 의해 생산된
복제인간들이 갖춘 도리어 '인간적인' 면모를 지켜보며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고개를 치든다.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윤리성이 무너진 사회가 지구상에 만연한 때야말로
지구가 멸망한 상태이지 아닐까?
에너지과 자원 고갈, 식량 고갈이나 자연재해로 풍비박산이 나는 물리적 멸망이 아닌
인간의 인간답지 못한 잔인한 폭력성이 고개를 쳐들고 그것을 막아낼 어떠한 통제 선이 사라진 상황이야말로 인류 멸망, 지구 멸망이 아닐까?
이러한 생각마저도
지구가 인간의 것이라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인간 위주의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것일까?
(아마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 박사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지구는 애당초 인간의 것이 아니었을지니...)
인공지능과 AI, 챗 GPT와 Bing AI가 새 시대의 새 바람을 불어 일으키는 오늘.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오랜만에 짧지만 여운이 긴 영화를 보아서 기분이 좋다.
번외로 이 우주선에는 영화 첫 장면부터 정말 인상적인 글씨가 눈에 띄는데 바로
기지의 이름이 '사랑'이다. 눈에 떡하니 들어오는 저 한글의 자태가 매우 어색하면서도 오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이 영화 리뷰를 잠깐 본 적이 있는데 감독 던컨 존스가 그 유명한 데이비드 보위의 아들이라는 것과 한국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특히 올드보이 영화의 광팬이라고 한다. 그는 영화 곳곳에 한국 사랑의 표식을 심어두었는데 기지 이름도 그렇고, 주인공이 영화에서 쓰고 다니던 캡 모자 옆부분에도 태극기 패치가 붙어 있다고 한다.(이 부분은 발견 못함. 눈이 좋은 분들은 꼭 한번 찾아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