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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불닭순한맛 Dec 18. 2022

한드 #2. 미생

2014년 tvN 방영, 16부작, 주연: 이성민/임시완/강소라/강하늘



유난히도 나에겐 한 번 꽂히면 질릴 때까지 탐닉하는 습성이 있다.

내게 이 미생이란 드라마는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그런 독특한 감성을 남긴 드라마다. 그래서 지금까지 총 6번쯤 정주행을 했는데 미래에 어떤 날 또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2014년 혹독했던 내 인생의 암흑기를 거칠 때 본방사수했던 드라마여서 인지, 더욱 애착이 간다.

그 당시의 젊었던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며 힘을 얻었고, 수 많은 내 주변의 인간 군상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는 일종의 지침서처럼 기능하기도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가 그간 살아온 길을 처절하도록,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꼬이고 잘못되었는지 되짚어보고 이렇게 만든 상대를 증오하고 자책하며 묵묵히 견뎌온 멍 든 시간.

그 시간과 함께 미생도 그 하얗고  추운 겨울을 같이 났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촬영된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를 매일 퇴근길에 마주치며 내적 친밀감을 혼자 느끼기도 했다. 언젠가 드라마 공식 시청률 몇퍼센트 이상이 되면 이성민 배우가 서울스퀘어 앞에서 프리허그를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당장 달려가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이 당시 미생에 내가 얼마나 단단히 미쳐있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금이 벌써 2022년이 끝나가는데 8년이나 된 이 드라마는 지금보아도 전혀 촌스럽거나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8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며, 나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저 수많은 직장 상사 캐릭터 중 누구와 가장 비슷할까?

내 주위의 오차장님과 같은 선배는 없는걸까? 있는걸까? 내가 그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이 든다.



코로나 시기에 지금 이 학교로 발령 받아 벌써 내년이면 마지막 해다.

비교적 조용한 학교에서 연구부장을 맡아보며 때때로북새통같은 난리통을 교무실에서 겪을 때도 있지만

교장, 교감 관리자 분들도 정말 인자하시고, 참 좋은 선배들도 많이 만나 나름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이상한 분들도 스쳐지나가긴 했지만 그럭저럭 나는 3년간 이 학교에서 많이 성장했다.

이제는 어느정도 여유가 있는 위치에서 어린 후배들을 끌어주려는 시도도 해보고, 안타까우면 조언도 해주고, 미연에 일이 꼬이지 않게 하거나 스무스하게 진행되기 위해 제반의 여건을 깔끔하게 미리 정리정돈도 해주는 센스가 생겨났다.


예전에는 내 일만 하기 바빴는데 이제야 큰 틀에서 전체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났다.

교직생활 16년 만에 얻은 내 자산이랄까. 기쁘다.


전교생 30명 남짓의 깡촌 학교에서 굴렀던 나의 초심.

특별한 사명관과 교직관을 가지고 이 곳에 발을 들인 것은 아니었지만 나 같은 케이스는 점점 나이가 들면서 교사로서의 마음이 채워지는 타입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초심을 떠올리면 뚜렷하게 잡히는 것은 없고 젊은 혈기에 아이들과 뛰놀며 즐겁게 보냈던 그 작은 시골 학교가 떠오를 뿐이다.


젊음을 낭비하며 빛났던 20대의 나의 모습,

좌절과 배움, 견딤, 가장 많은 내적 성장통을 겪었던

30대,

그리고 이제 다가올 40대의 나에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궁금하다.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 해서인 걸로 생각하겠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으로 나온 거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      




가장 첫 화에 등장한 가슴 아픈 대사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의 나를 부정하고, 열심히 안한 것이라고 생각해야만 겨우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 마음의 무게. 얼마나 스스로를 내려놓아야 이런 생각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지금까지 쌓아올린 나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간의 나의 시간과 노력 피, 땀, 눈물을 다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물론 20대와 40대가 쌓아올린 시간의 가치를 동등하게 놓고 비교할 순 없지만 각자의 시간이 소중한 것 마찬가지니까...

그렇지만 장그래처럼 취하지 않고,

하루하루 성실히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한 수 한 수 두는 바둑처럼 신중하게 걸어나간다면 후회 없는 삶이 되겠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오히려 곱씹게 되는 나의 인생 드라마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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