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벽면에 다시 붙인 낯선 단어 '연애'

지인들의 조언보다는 나의 직관을 믿기로 하다

by 고펭

새해 아침, 책상 앞 빈 벽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포스트잇 한 뭉치를 꺼냈다.

올해는 단순히 '해볼까?' 하는 막연한 다짐에 그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매년 그랬겠죠? ㅠㅠㅎㅎ)

실행하고, 과정을 기록하고, 기어이 결과라는 열매를 맺고 싶다는 간절함이 나를 움직였다.

커리어 확장, TOEIC 점수 달성, 저축하기, 그리고 유연한 몸을 위한 다리 찢기까지.

벽면은 금세 노란 종이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그 빽빽한 목표들 사이로, 한동안 제 삶에서 꽤 먼 거리에 두었던,,,

사실은 관심 밖으로 완전히 밀어두었던 단어 하나를 조심스럽게 적어 넣었다.

바로 '연애'.


생각해 보면 20대의 삶 속에서 연애는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필수 요소였다.

그 시절의 나는 오직 20대에만 할 수 있는 뜨거운 사랑이 있다고 굳게 믿었는데.

누군가를 진심을 다해 좋아하고, 그 마음을 나누는 과정이 삶을 가장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런 확고한 가치관 덕분이었는지, 원하는 대로 나의 20대 연애는 멈춘 적이 없었다.

아, 물론 국방의 의무를 다하며 세상과 잠시 단절되었던 그 시절만큼은 예외였지만. (웃음)


30대에 접어들고 삶의 무게 중심이 '생존'과 '성취'로 옮겨가면서,

연애는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새로운 누군가를 알아가고 감정을 소비하는 과정이 때로는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렇게 몇 년을 '연애 없는 고요함' 속에 보냈다.


내가 다시 연애와 결혼을 떠올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혼자가 너무 좋아져서'이다.

말 그대로, 지금 나는 혼자 너무 잘 지내고 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균형을 완벽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잘 조절하고 있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달콤하다.

평일에는 수많은 사람과 치열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주말이면 오롯이 나만의 공간에서 에너지를 채우는 루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 습관부터 식사 관리에 보고 싶은 드라마 정주행까지, 나만의 단단한 루틴들이 이미 삶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얼마 전 연말 모임에서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더니 다들 독특하다며 웃었다.

나는 꽤 진지했었는데,, 이 완벽한 '나만의 성' 안에서 1~2년을 더 안주하며 보내면, 나중에는 '우리'라는 단어가 들어설 자리가 영영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30대를 마무리하면,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에 대해 '굳이?'라는 냉소적인 단어가 머리를 꽉 채워버릴 것만 같다.

'나' 위주의 삶이 주는 안락함이 너무 견고해져서,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함을 영영 잃어버릴까 봐 덜컥 겁이 난 것 같다.


그래서 올해는 이 단어가 다시 삶에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움직이니 주변의 반응도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잠잠했던 '결혼과 연애'에 대한 질문들이 폭포수처럼 밀려온다.

또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는 솔로> 출연도 강력하게 추천한다. ^^

"너는 나가면 딱 영수 스타일이다", "아니지, 의외로 영호 같은 매력이 터질지도 몰라", "영철이처럼 직진하는 모습도 어울릴 것 같은데?"라며 나의 이미지를 분석해 주느라 바쁘다.

심지어 직접 신청서를 대신 작성해 주겠다며 노트북을 펴는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

아, 정말 내가 연애를 할 때가 되긴 했나 보다' 하는 실소가 터져 나온다.


이런 주변의 성화가 싫지만은 않다. 어쩌면 무의식이 보낸 신호를 주변 사람들이 먼저 읽어낸 것일지도 모르니까. 다만, 20대 시절처럼 무작정 뜨겁게 타오르기만 하는 연애를 꿈꾸지는 않는다. 그리고 여러 지인들의 관심은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이제는 조금 더 담백하게, 그리고 '나의 직관'을 믿는 만남을 가져보려 한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만날 때 수많은 조건을 생각해 보게 된다.

직업, 성격, 취향, 미래의 가능성까지. 하지만 그런 계산기 끝에 내린 결론보다 때로는 찰나의 순간에 느껴지는 '직관'이 더 정확할 때가 있는데, 올해는 남들이 말하는 정답이나 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내 마음이 먼저 "이 사람이다"라고 반응하는 그 감각에 선택을 맡겨보려 한다.


물론 벽에 붙여둔 이 노란 포스트잇이 언제까지 붙어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고 목표했던 저축이나 다리 찢기보다 훨씬 더 어려운 난제가 될 수 있겠지만 몇 년 만에 다시 꺼내 든 이 단어가 주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싫지 않다. 20대의 열정과 30대의 여유 그 어딘가에서, 나의 직관이 안내하는 새로운 인연을 찾고 또 기다리는 걸 시작해보려 한다.


만약 올해 나의 직관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내년 새해에는 포스트잇에 '연애' 대신 좀 더 구체적이고 설레는 다른 단어를 적고 있을지도? 아니면, 정말로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나는 솔로> 신청서를 쓰고 있을지도. 하하하.

2026년, 한쪽 벽면에 붙은 이 작은 종이 한 장이 어떤 드라마를 써 내려갈지 나도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려 한다.


ps. 봄이 지날 때쯤 정말 신청이라도 한 번 해볼까 싶네요, 어차피 경쟁이 치열해서 뭐,, ㅠ

ps. 제 인연이 어딘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꼭 대한민국이 아닐지라도,,^^

ps. 저는요, 키가 큰 편입니다! 눈이 좋아요! 손이 항상 따뜻합니다! 뜨죽아에요!

(TMI: 한여름에 뜨거워 죽어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