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와 하이파이브하고 돌아온 20대
사전적 의미의 쉼은 단순하다.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편안히 두는 것.
하지만 치열한 현장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쉼의 정의는 그리 간단치 않다.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을 견뎌내는 사람들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묻고 싶다.
“당신은 정말, 잘 쉴 줄 아는가?”
나의 20대는 지독하게 뜨거웠다. 지금도 여전히 인생의 전성기를 살고 있다고 믿지만, 그때의 에너지는 유독 날것의 형태였다. 20대에 가지고 있던 강한 신념은
'20대에 할 수 있는 건 20대 때 최대한 해봐야지'
였다. 세상의 모든 문을 한꺼번에 열어젖힐 수 있다고 믿는 오만한 정복자처럼 살았다.
그렇게 멋대로 자유롭게 살던 20대 중반의 어느 늦은 봄날이었다.
낮에는 교사의 꿈을 위해 대학교 학업과 중간고사, 교생 실습 현장을 누볐고,
아침저녁으로는 미식축구선수로서의 삶을 함께 이어갔다.
대학교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던 미식축구는 당시 기준으로 30년 이상의 전통 깊은 유대를 가진 팀이었고 그 속에서 나는 나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부터 빛나는 선수는 아니었다.
운동 센스가 부족해 주전 근처에도 가지 못했지만, ‘전성기 한 번쯤은 누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집념으로 버텼다. 결국 주전 자리를 꿰찼고 팀의 주장을 맡으며 좋은 성적도 거두었다.
그 기세는 국가대표 선발이라는 기회로까지 이어졌지만, 아쉽게도 최종 선발의 인연은 닿지 않았다. 내 인생에 후회란 단어는 없다고 자부하지만, 딱 하나 꼽자면 국가대표라는 이름을 가슴에 달아보지 못한 그 짧은 지점이 유일한 미련으로 남았다. (프로까진 아니었어도 나름 큰 도전이었기에 적다 보니 또 사색이 이어졌다 ㅠㅠ)
Anyway, 몸은 정직하다.
하지만 젊음은 종종 그 정직함을 기만한다.
당시에 국제 경기까지 잡혀버려서 경기 준비와 교생 대표 수업, 그리고 쏟아지는 시험공부까지.
하루에 몇 시간도 채 자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아침 일찍부터 새벽까지 몸을 밀어붙이자 체력은 바닥이 났고 면역체계는 소리 없이 무너졌다.
그 신호는 온몸에 붉은 두드러기로 나타났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저 주사 한 방이면 나을 알레르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 주가 지나도 차도가 없자 의사 선생님은 심각한 경고를 던졌다.
"학생, 이건 음식이 문제가 아니야, 잘못 먹은 게 없는데 반복적으로 이렇게 증상이 나타나는 건, 면역체계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신호야. 더구나 몸에 열을 내면 위험해져."
얼마나 철이 없었을까, 그 말을 듣고도 나는 운동장으로 향했다.
'정신력이 몸을 지배한다'는 무식한 신념이 나를 지배하던 시절이었으니까.
결국 탈이 난 건 그다음 주였다. 친구와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던 평범한 오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목이 조여왔다.
지나고 알게 되었지만 결국 두드러기가 피부 겉이 아닌 장기 내부로 돋아나 기도를 막아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안한데, 컨디션이 좀 안 좋네. 나 가봐야겠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에 나는 친구에게 미안함을 전하며 일어서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지독하게도 예의 바르고 철없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 상태가 심각함을 직감한 친구는 지체 없이 나를 응급실로 데려갔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도 친구는 심각하고 난 미안하다 그랬던 모습이 기억이 생생하다.
이때 응급실 속에는 또 다른 응급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생명이 위태로운 이들만 들어간다는 그곳에서 난 점점 정신을 잃고 있었고,
양 옆에는 의료진 8명 정도가 침상 양 옆에 붙어서
'정신 잃으면 안 됩니다'
라며 온몸을 꼬집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잠시 떠났다 온 것 같다.
어느새 양팔에는 주삿바늘이 꽂혀있었고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천장을 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가족들이 놀란 표정으로 병원으로 들어오던 모습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 와중에 난 남겨야 한다며 사진을 찍었다. 하하하,,
온몸이 퉁퉁 부어오른 채 사투를 벌이던 그 흐릿한 기억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존재와 마주했다.
(함께 있었던 친구는 그날 나의 생명의 은인이 되었고, 나는 지금도 매해 그의 생일을 챙기며 그날의 빚을 기억한다.)
다행히 빠르게 회복되어 금방 퇴원할 수 있었고, 당시의 여자친구에게 나는 실없이 웃으며 말했다.
"나 저승사자랑 하이파이브하고 왔어ㅋㅋㅋ"
지금은 헤어진 지 한참 된 인연이지만,
울먹이며 나를 혼내던 그녀의 모습 뒤로 나는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죽음이란 게 참 허무하고 한순간이구나.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수去)라 했던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에서,
내가 그토록 집착했던 성과들도 결국 내 몸이 존재해야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날 이후, 나는 1~2년 주기로 증명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지금도 계속 기록하고 있다. 기록된 모습들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짧은 주기임에도 사진 속의 나는 늘 변하고 있었고, 그 기록은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데이터가 되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20대의 나는 그렇게 '쉼'과 '기록'의 가치를 뼈아프게 배웠다.
하지만 인간의 망각은 당연한 것이라 했던가,,
또 다른 시련이 다시 찾아오기 된다.
30대의 나에게는 육체적인 한계를 시험하는 또 다른 파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ps. 이번 이야기는 1,2부로 나뉘어 전개됩니다. 바로 다음 편으로 가시죠!
ps. 전 여전히 뭐든 주어진 걸 열심히 합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지요 :)
ps. 그래도 몸이 소중하다는 건 잊지 않고, 건강관리와 체력관리 꾸준히 잘하고 있습니다!
ps. 표지 이미지에 글자가 조금 깨졌어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