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우리를 부를 때

by 야옹이


우리는 흔히 고통을 벌이나 실수의 대가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고통은 처벌이 아니라 초대에 가깝다.

고통이 삶의 문을 두드릴 때 그것은 바깥이 아니라 안쪽을 보라는 신호일 수 있다.

내가 만든 역할과 서사로 꽉 차 있을 때,

그 서랍을 억지로 여는 방식으로 고통은 찾아온다.

가 믿고 있던 그 사람이 정말 나인가?”라고 묻기 위해서.

고통이 하는 일은 단순하다.

'생각하는 나'를 '보고 있는 나'로 관점을 바꾸게 만든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입었던 또는 입고있는 상처와 동일 시한 채로 살아간다.

버려진 과거, 실패의 순간, 억울했던 기억, 인정욕구, 결핍감 같은 것들이 곧 “나”라고 믿는다.

하지만 진짜 고통은 그 정체성을 무너뜨리며 이렇게 묻는다.

“그 모든 걸 겪고 있는 존재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은 그 질문 앞에서 산산히 부서지고,

어떤 사람은 그 틈으로 깨어난다.

깨어남은 극적인 사건이 아니다.

단지 상처와 동일시하던 시선을 옮겨,

그것을 지켜보는 자리로 이동하는 일이다.

마음속에서 생각이 폭주할 때,

“이건 나에게 일어나는 체험이지, 내가 곧 이것은 아니구나”라고

아는 바로 그 순간이 깨어남이다.

그러나 깨어남이 모든 것을 바로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각성’을 초월이나 비현실적 도약으로 오해한다.

마치 하늘로 둥둥 떠오르거나 순식간에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존재가 되는 일처럼 상상한다.

하지만 깨어남은 떠오르는 일이 아니라 돌아오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으로. 과거에 짓눌리지 않고, 환상에 끌려가지 않고,

자아의 통제욕에 흔들리지 않은 채로. 이야기로 살지 않고 존재로 사는 선택이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묻는다.

“왜 삶은 이렇게 나를 부수는가?”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그 부서짐이 없었다면 오르막길도 없었음을.

어떤 길은 막혀 있던 벽이 무너져야 드러나고,

어떤 사람은 무너지고 나서야 자신을 보기 시작한다.

깨진 조각이 길이 되는 방식으로 삶은 우리를 깨닫게 만든다.

결국 고통이 만든 균열과 소리가 깨달음의 첫 계단이 된다.

그 순간부터 더 이상 과거의 서사가 나를 대표하지 못하고,

욕망이나 두려움이 운전석에 앉지 못한다.

나는 이야기를 겪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보고 있는 자리로 옮겨간다.

그러면 비로소 선택이 생긴다.

멈추거나 올라가거나, 계속 아프거나 깨어 있거나.

고통이 나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고통이 나를 부른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는 이해하게 된다.

우리를 힘들게 했던 바로 그 것들이,

사실은 우리가 올라설 계단을 만들고 있었음을.

그리고 그때부터 삶은 나를 끌고 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깨어 있는 채로 통과하는 길이 된다.

작가의 이전글말은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