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자기애를 경계해야 할 감정으로 배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태도는
쉽게 오만이나 나르시시즘으로 오해되고,
겸손과 절제의 미덕 앞에서
한 발 물러서야 할 것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삶을 조금만 오래 들여다보면,
자기애는 사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기본 장치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기 자신마저 사랑하지 못하는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가혹하다.
그 순간부터 삶은 의미를 찾는 여정이 아니라
고통을 견디는 문제로 바뀐다.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가 사라지고,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이 된다.
그래서 자기애는 마지막까지 무너지지 말아야 할
최후의 보루처럼 느껴진다.
이 지점에서 자기연민은 나약함이 아니라
정신적인 응급처치에 가깝다.
완벽한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흠이 있고 어설픈 나를
그래도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최소한의 온기다.
물론 삶은 혼자만의 애정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친구와의 우정, 가족과의 유대, 연인과의 사랑,
그리고 자연과의 조용한 연결은
삶을 훨씬 풍요롭고 입체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추가적인 의미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이전의 기준,
없으면 삶 자체가 흔들리는 바닥선이다.
나조차 나를 혐오하게 되는 순간,
세상은 더 이상 견뎌볼 만한 장소가 아니다.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세상과의 연결을 끊어버리는 이유도
대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먼저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면
삶은 각자 다른 감각기관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제각기 다른 해석을 붙이다가
언젠가 종료되는 하나의 시뮬레이션 게임에 가깝다.
우리는 같은 장면을 보고도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 사실은 허무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동시에 우리를 조금 가볍게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이 게임을 끝까지 버텨내기 위해
우리는 몇 가지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자기애는
과하지 않게,
그러나 쉽게 무너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구축해 두어야 할 핵심 장비다.
자기애는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믿는 오만이 아니다.
그저 이 세계에서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무가치하지는 않다고
조용히 인정해주는 태도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 정도만 있어도
우리는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