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대상은 과연 실제의 그 사람일까.
아니면 내 마음속에서 조용히 조립된 하나의 이미지일까.
조금 솔직해지자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대개 후자에 가깝다.
상대의 말투 몇 개, 표정 몇 장면,
그때 느꼈던 감정 위에
나의 욕망과 기대, 바람과 불안이 덧붙여져
하나의 인물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인물을 ‘그 사람’이라고 부른다.
물론 현실 속의 상대는
잠시 그 이미지와 닮은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 순간이다.
사람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매일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감정에 흔들리고,
어제의 선택을 오늘은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심지어 본인조차
자신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렇다.
몸은 날씨처럼 변덕스럽고,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기울어진다.
어제는 중요했던 것이
오늘은 별일 아니게 느껴지고,
사소했던 경험 하나가
나를 조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우리는 늘 변화 중인 존재다.
완성된 상태로 머무는 날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상대방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역시 매일 무언가를 겪고,
조금씩 바뀌며 살아간다.
하지만 관계 속에서 우리는
그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그다지 능숙하지 않다.
대신 어느 시점의 모습을
마음속에 고정해 둔다.
그리고 그 고정된 이미지를 기준으로
사랑하고, 실망하고, 분노한다.
실제의 사람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내 안에 있는 상(像)을 향해
감정을 쏟아붓는 셈이다.
그래서 관계는 종종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상대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데,
나는 여전히 예전의 모습을 요구한다.
“왜 변했어?”라는 말 속에는
“왜 내가 기억하는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느냐”는
아쉬움이 숨어 있다.
이럴 때 관계는
마치 혼자 하는 쉐도우 복싱처럼 느껴진다.
상대는 링 위에 없는데,
나는 계속 주먹을 휘두른다.
사랑도 미움도
실제의 상대보다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와 더 많이 부딪힌다.
이 지점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변하지 않는 실체는 없다’는 생각은
의외로 현실적인 조언처럼 다가온다.
모든 것은 흐르고,
사람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관계를 조금 덜 아프게 만드는 태도다.
상대를 고정된 존재로 보지 않으면
실망도 줄어든다.
기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기대가 좀 더 느슨해진다.
그만큼 상대에게
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준다.
어쩌면 사랑이란
상대를 붙잡아 두는 일이 아니라
계속 변하는 존재를
그때그때 다시 만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니라
오늘의 그 사람을
다시 바라보는 연습 말이다.
그리고 그 연습은
상대를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나 자신 역시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도 변하고 있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며,
그 변화 속에서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존재로 남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관계는 조금 느슨해지고,
대신 숨 쉴 공간이 생긴다.
완벽히 이해하려는 욕심 대신
오늘의 모습을 존중하는 태도가 들어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상대를 완전히 안다고 믿지 않는 것,
그리고 오늘의 그 사람을
오늘의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