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진짜 나’에 집착하는 걸까.
마치 어딘가에
가짜와 진짜를 가르는 경계선이 있고,
그걸 넘기만 하면
비로소 안심해도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처럼.
그래서 가면이라는 말을 쓴다.
회사에서의 나,
관계 속에서의 나,
웃고 있지만 사실은 지친 나.
이건 가면이고
저게 진짜일 거라고
자꾸 구분하려 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 사람이 가면 하나만 쓰고 사는 경우가 어디 있나.
상황이 바뀌면 얼굴도 바뀌고,
상대가 달라지면 말투도 달라진다.
그게 거짓이라기보다는
그냥 살아 있는 반응에 가깝다.
피부를 벗기면 더 내가 될까.
근육을 떼어내면?
뼈만 남으면?
뇌?
의식?
어디까지 가야
“이게 진짜 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끝까지 가도
딱 떨어지는 답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참나’라는 말이
때로는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너무 자주
살면서 동시에 해설까지 하려고 든다.
지금 느끼는 감정을 느끼기보다
이게 맞는 감정인지 분석하고,
이 선택을 해도 되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허락을 구한다.
물론 생각은 필요하다.
하지만 생각이 너무 앞서면
삶이 뒤처진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쪽이
조금 더 솔직하게 느껴진다.
그냥 살자.
그때그때 반응하고,
조금 흔들리고,
때로는 멋대로도 해보고.
강의 흐름에 몸을 맡기듯
주어진 상황에 녹아들어
잠깐이라도 Flow에 들어가 보는 것.
이게 정답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또 다른 회피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나쁜 전략은 아니다.
중요한 건 하나다.
그 선택의 결과를
내가 감당할 수 있느냐.
감당할 수 있다면
조금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가면을 벗기느라
삶을 놓치기보다는,
여러 얼굴로 살아가면서도
그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남는 것.
요즘의 나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