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대한 단상

by 야옹이


고통은 죽으면 못 느낀다.
이건 좀 이상할 만큼 명확한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고통은
살아 있는 동안만 겪을 수 있는 감각이다.
기쁨처럼, 설렘처럼,
짜증이나 피곤함처럼
기한이 정해져 있다.


사람들이 고통을 제일 힘들어하는 이유는
아파서가 아니다.
이 상태가 계속될 것 같아서다.


지금 이 아픔이
내일도 이럴 것 같고,
다음 달도 이럴 것 같고,
이러다 그냥 이렇게 살아가게 될 것 같을 때
사람은 먼저 겁을 먹는다.


그래서 고통보다
생각이 더 사람을 괴롭힌다.


막상 지나고 나면
대부분의 고통은
어느 시점에서 모양이 바뀐다.
강도가 줄거나,
다른 문제로 덮이거나,
그냥 다음 국면으로 넘어간다.


그걸 몇 번 겪고 나면
고통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진다.
“아, 이건 지금 구간이구나” 하고.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즐겨라”라는 말은
솔직히 말하면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아픈 사람 앞에서 하기엔 꽤 무례하고 불쾌한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조금만 현실적으로 바꾸면
이런 뜻에 가깝다.


피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끝까지 버둥거리느라
자기 인생을 더 갈아 넣지는 말자는 얘기.


고통을 인정하지 않으면
사람은 계속 다른 타임라인을 산다.
그때 그 선택만 안 했어도,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누가 그때 잡아줬더라면.


이 생각들은
아픔을 줄여주지 않는다.
지금 시간을 낭비하게되고 과거 시간에 질질 끌려다닌다.


반대로
“지금은 이 구간”이라고 인정하면
사람은 갑자기 현실적인 사람이 된다.
오늘은 뭘 하면 좋을지,
이 상태에서 나를 덜 망가뜨리는 선택은 뭔지,
오늘 하루는 어떻게 넘길지.


이 질문들은
인생을 멋지게 만들지는 않는다.
대신 하루를 끝까지 보내게 해준다.


고통이 특별해서 의미 있는 건 아니다.

끝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생긴다.

고통이 아니라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

사람을 조급하게 만든다.


그래서 고통 앞에서
가장 현실적인 태도는
미워하지도 말고,
굳이 좋게 포장하지도 않는 거다.


그냥
“아, 지금 이걸 겪는 중이구나” 하고
통과하기로 결정하는 것.


고통이 삶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아직 우리 생이 끝난 건 아니라는 표시 정도로

조금은 캐쥬얼하게 생각하고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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