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 관계를 완료형으로 본다.
어디선가 함께 웃고,
같은 시간을 지나왔다는 사실만으로
그 관계는 이미 의미를 가진다.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
관계가 영원할 수는 없다.
그건 너무 많은 걸 전제로 한 기대다.
사람들이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 이유는
대부분 영원을 기본값으로 두기 때문이다.
계속 함께할 거라 믿고,
늘 같은 방향일 거라 생각하고,
마음이 변하지 않을 거라 가정한다.
그래서 멀어지면
서운함이 생기고,
어긋나면 배신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관계에도
분명히 흥망성쇠가 있다.
어떤 관계는
씨앗으로 시작해
한때는 큰 나무가 된다.
그늘을 만들고,
열매를 맺고,
서로 기대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성장이 멈춘다.
잎이 떨어지고,
가지가 마르고,
고목처럼 남는다.
이건 실패가 아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관계가 사그라들었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났다고 보지 않는다.
관계를 맺었던 주체들이
아직 삶을 이어가고 있다면
다시 시작할 여지는 늘 남아 있다.
고목이 된 나무 안에는
씨앗이 남아 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여도
안에서는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때가 맞고,
이해가 맞고,
마음이 다시 맞으면
고목에서 꽃이 필 수도 있다.
아니면
그 씨앗이
다른 자리에서
다시 자라날 수도 있다.
물론 확률은 높지 않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관계에는
과거의 흔적이 남는다.
상처는 옹이처럼 박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옹이조차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막지는 않는다.
관계는
항상 가능성을 품고 있다.
삶이 계속되는 한에서.
그래서 나는
관계에 너무 매달리지 않는다.
오고,
가고,
다시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것.
그 과정 자체를
자연스럽게 둔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만남이 있으면 흩어짐이 있고,
떠남이 있으면 돌아옴도 있다.
굳이 붙잡지 않아도 된다.
억지로 의미를 늘리지 않아도 된다.
함께한 구간이 있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 정도 거리에서 바라볼 때
관계는
오히려 오래 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