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송의 프리렌'을 보고 난 뒤에

by 야옹이


연휴기간 내내 넷플릭스에서 '장송의 프리렌'을 보고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다른 애니메이션과 좀 달랐다.
울어야 할 장면에서 울지 않았고,
대단해야 할 장면에서는 오히려 조용했다.


사람이 죽는 순간보다
사람이 죽고 난 뒤의 시간이
더 길게 흘렀다.


보통 이야기는
영웅이 쓰러지는 순간에 막을 내리는데,
이 이야기는
그다음 날의 아침을 보여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작되는 하루를.


엘프인 프리렌은 강하고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산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그녀에게 너무 빨리 지나간다.
같이 걷고, 싸우고, 웃었지만
정작 그 의미를 이해했을 때
그들은 이미 세상에 없다.


그 장면들이 묘하게 현실 같았다.
우리는 늘 뒤늦게 안다.
그 사람이 왜 소중했는지,
그 시간이 왜 한 번뿐이었는지.


이 작품을 보며
사람 사이의 시간을 떠올렸다.
우리는 서로를 만날 때
은근히 영원을 전제한다.
내일도 있을 거라고.
다음에도 말할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오늘의 말이 조금 거칠어지고,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느슨해질 때도 있다.
나중에 정리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프리렌의 시간을 따라가다 보니
그 ‘나중’이라는 게
생각보다 자주 오지 않는다는 걸
자꾸 떠올리게 된다.


‘장송’이라는 말은
무언가를 끝내는 느낌이 강한 단어인데,
이 작품에서는
끝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받아들인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말하지 못한 마음을.
프리렌은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늦게 이해한다.
그리고 그 이해를
다음 만남에서 조금 더 조심스럽게 쓴다.


그 태도가
이 작품을 슬프게 만드는 동시에
묘하게 편안하게 만든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사람은 늘 변하고,
관계도 형태를 바꾼다.
그걸 붙잡으려 하면
상처가 남고,
인정하면
조용해진다.


떠날 수 있다는 걸 알고 대하는 마음은
차갑지 않다.
오히려 말이 줄고,
행동이 신중해진다.
오늘 이 말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굳이 독한 말을 고르지 않게 된다.


『장송의 프리렌』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어떤 마음과 자세로 시간을 쓰느냐를 묻는다.
함께 있는 순간을
당연하게 넘길 것인지,
조금 더 귀하게 둘 것인지.


이 작품을 보고 나서
사람에게 말을 걸 때
한 박자 쉬게 됐다면,
그걸로 충분한 후기일 것 같다.


마법보다 오래 남는 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장면들이었다.
그리고 그 장면들이
현실의 내 주변 사람들 위에
조용히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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