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가 사라진 사회

자기중심적 개인들

by 이안아빠

현대사회에서 타자란 존재는 점점 더 그 존재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자기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만드는 사회문화적, 기술적 환경들이 타자라는 존재를 사라지게 만든다. 타자가 사라진 사회는 오로지 자기만 존재하는 사회이다. 한병철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는 타자를 위한 시간이 없다. 자기의 시간으로서의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타자를 못 보게 만든다”(2022, p.109)고 하였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만 몰두하는 현실에서 타인의 존재는 눈에 들어오지 않거나 혹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되었다. 타자를 의식하지 않는 개인은 자기중심적이다. 자기중심적 개인은 타자와의 대화와 관계속에서 자기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단지 자기에게만 집중하고 자기 선택만을 중시한다 (테일러, 2022).


우리는 현재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전시하기위해 여념이 없기에 타자에 대한 염려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디지털 세상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드러내기위한 공간이지 더 이상 타자와의 관계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공유하기에도 하루가 모자라기에 타자를 이해하기위한 시간이 도무지 나질 않는다. 우리는 수십번의 시도 끝에 겨우 한장의 셀피를 건지고 완벽한 셀피를 위해 하루의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사진은 더 이상 타자들과 공유하기위한 기념이나 기억의 요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자신의 순간을 포착하고 전시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 먹은 음식, 방문한 카페, 구매한 명품, 여행지에서의 일상 등 나라는 존재를 전시하는 것이 사진의 목적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타자란 존재는 철저히 자본주의적 논리에 따라 그 존재가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기도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디지털 세상에서 타자와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구독'과 '좋아요’라는 철저히 자본주의적 논리에 기반한다. 나의 글이나 영상에 타인이 먼저 ‘구독’ 혹은 ‘좋아요’라는 자본주의적 표현을 했을때 타인의 존재가 비로소 시야에 드러나게 된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어떤 인간적인 요소보다 자본주의적 요소가 우선시 된다. 그래서 유튜버들은 시청자들에게 계속해서 '구독'과 '좋아요'를 클릭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것이 영상을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이자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설득한다.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이 타자에 대한 존재유무를 결정하는 요소이다.


이러한 현상은 디지털 세상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도 나타난다. 자신만을 보는 존재는 타자를 살펴볼 겨를이 없다. 자신만을 보는 존재는 나르시시즘적이다. 자신의 존재가 너무 소중하기에 자신을 치장하고 드러내는 것에만 몰두한다. 자신이 소중하고 더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타인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타인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행동하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친다. 그래서 이것은 이 시대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타인과 함께하는 엘리베이터에서 큰 소리로 전화를 하거나 동영상을 보는 것, 타인이 엘리베이터에 타거나 내리기도 전에 닫힘 버튼을 누르는 것, 기다리는 사람을 무시하고 앞질러 지하철을 타는 것 등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존재없음의 순간이 빈번하다. 오직 타인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은 자신보다 더 화려한 타인에게만 해당한다. 그러나 그 시선은 인간적이기보다 질투에 바탕을 두고 있어 타인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크고 화려한 날개를 가진 공작새와 같이 누구보다 더 크고 화려한 물건을 소유하고자 한다. 사는 동네, 아파트, 보유중인 자동차 등으로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더 좋은 집과 차를 소유하기 위해 타자의 존재를 잊어버린 채 혹은 무시한채 앞만 보고 달려간다.


이러한 삶은 역설적으로 타인의 존재가 나의 가치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자기 존재를 전시하는 대상과 기준이 타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자기자신만이 중요한 존재라고 여기나 그것은 내면을 향하지 않고 외부를 향하고 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모방적 삶의 형태이다. 이것은 찰스 테일러(2022)에 의하면 철저히 삶의 모델을 자기와의 접촉을 통해 자기자신의 본연성.독자성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찾는 것이다.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기준이 외부에만 존재하는 개인은 자기를 규정할 수 없다. 자기를 규정할 수 없기에 자기실현이라는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


이러한 타자에 대한 시각은 결국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철저한 소외와 무시로 드러난다. 타자에 대한 인간적 이해나 공감은 불필요한 것 혹은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회적 약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라고 여긴다. 타자들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우리 시대의 각자도생 현상은 더욱 더 가속화 될 것이다. 한병철은 “오로지 타자의 시간만이 강한 결속을, 우정을, 바로 공동체를 만들어낸다”(2022, p. 109)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찰스 테일러 (2022) 불안한 현대사회. 이학사

한병철 (2022) 사물의 소멸. 김영사


작가의 이전글삶의 허기: 맛집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