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정당성: 영화 '서울의 봄'

by 이안아빠

우리 사회에서 공감과 정당성은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와 사회적 강자에게 부여되는 공감과 정당성은 상당히 큰 차이를 보여준다. 공감이 다르게 발휘됨으로 정당성도 다르게 부여된다. 우리는 재벌들이 기업 승계를 위해 내야 하는 상속, 증여세나 다주택자들에게 부과되는 종부세 등에는 안타까움의 시선을 가진다. 열심히 일해 모은 재산을 아깝게 세금으로 내야 한다고 분노하며 그들의 탈세나 탈법에 은근히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곤궁한 상황에 대해서는 게으름이나 개인적 책임 등으로 돌리며 그런 인생을 살아왔기에 당연한 것이라 말한다. 그들의 어려움에 어떠한 공감도 정당성도 부여되지 않는다.


우리의 공감과 정당성은 사회적 강자에게 매우 너그럽게 발휘되는 반면 사회적 약자에게는 매우 가혹하게 발휘된다. 그런 태도를 가지는 이유는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사회적 약자의 자리에 위치시키기보다 사회적 강자로 여기거나 혹은 사회적 강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강자와 자신의 존재를 연결시키고자 하는 것은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의지하고 삶의 방향성과 의미를 찾고자 함이다. 자신의 자아를 사회적 강자의 모습에서 찾고 동일시함으로써 안정감을 느낀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이 “사실 인간이라는 동물은 강력한 누군가가 자기를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라고 하였듯이 말이다. 자기 자신도 하나의 약한 사회적 객체라는 인식으로부터 벗어나게 도와준다.


이것은 그 자신 스스로 자신을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 인식하고 자유를 추구하기보다 개체화에 대한 거부이다. 왜냐하면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이 개체화는 또 한편으로는 고독과 불안이 늘어나고 그로 말미암아 세계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의심, 자기 삶의 의미에 대한 의심이 강해지고, 그와 함께 개인으로서의 자기가 너무 무력하고 하찮다는 느낌이 강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 기득권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시위에는 공감하지만 장애인, 노동자, 성소수자 등의 사회적 약자의 시위에는 불만을 늘어놓는다. 사회의 목소리가 되어야 할 언론이 그러한 프레임을 더 강화한다. 예를 들면 의대 정원 확대와 같은 경우에는 이해당사자인 의사들의 불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시위의 정당성을 강화시켜주나 전장연의 시위에는 출퇴근자들의 불만을 보도하며 시위의 정당성을 지우려 노력한다. 정당성을 부여받은 자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결국에는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것이 불법과 폭력을 동반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정당성을 박탈당한 사람들은 점점 더 우리 사회에서 잊혀져 간다.


영화 ‘서울의 봄’은 12.12 군사반란을 재구성한 것으로 그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서울의 봄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은 그것의 결과를 알기에 무력감과 같은 것이었다. 군사정권은 스스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폭력적으로 획득하였지만 그것을 유지시켜줬던 것은 언론, 지지자들과 같은 부역자들이었다. 사회의 절대적 강자이자 악이었던 정권에 자신들의 삶을 맡긴 이들이 존재했기에 오랫동안 정권이 유지되었다. 여전히 군부독재정권을 미화하는 정치세력, 언론, 지지자들이 존재한다. 그 시대에는 강력한 리더가 필요했고 그랬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고 공감을 요구한다. 그러한 목소리들이 여전히 과거 군부독재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군부독재정권의 정당성은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 시위자들의 정당성을 폄훼하는 요인으로 이용된다.


군부독재정권과 그 부역자들은 남은 생 동안 화려한 삶을 살다 갔고 그들의 가족들은 부귀영화를 누리며 이 사회의 기득권자로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그들에게 공감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정치세력, 언론, 지지자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들과 그들의 가족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강자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공감을 가지는 세력이 있는 한 그들의 정당성은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군사반란과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던 많은 이들은 희생되었거나 이 사회의 약자로 살아가며 잊혀지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우리는 사회의 기득권자들에게 향하는 공감과 정당성을 거두고, 박탈해야 한다. 그들의 정당성을 박탈하는 방법은 그들의 지위를 사회적 약자로 강등시키거나 혹은 잊혀진 그리고 지금도 잊혀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곤궁에 공감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군사독재정권과 그 부역자들과 같은 기득권자들의 존재를 우리 사회에서 보잘것없고 하찮은 존재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을 화려한 기득권을 가진 존재가 아닌 보잘것없고 하찮은 존재로 만드는 것이 시작일 것이다.


참고문헌

에리히 프롬 (2020) 자유로부터의 도피.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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