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연출을 즐겨라

[경제적 연극 연출] 동아리 창작극 <수재>에서

by 스토리광공

성균관대 연극동아리 능라촌의 <수재> 감상했습니다!

비록 연극은 잘 모르지만, 학생분들의 영리하고 효율적인 연출기법들을 여러가지 배워갑니다,,,, 분석 섞인 리뷰 글이 될 것 같네요.




매우 간단한 내용 요약

내가 이해한 게 맞겠지...?


KakaoTalk_Photo_2026-03-15-11-28-39.jpeg 나눠주신 팜플릿! 예쁘다.


시골 마을 지원리 고등학교의 유일무이한 수영 천재, 홍베파. 제 2의 베파가 되고자 하는 꿈을 키우는 1학년 후배 제노! 제노는 베파 밑에서 수영을 배우며, 부족한 실력에도 경기에서 정정당당히 그녀를 이기고자 하는데...


막상 열린 수영 대회는 베파를 천재 자리에 유지시키 위한 도구일 뿐,,, 제노는 베파를 위해 기권을 강요받는다. 분노한 제노, 한동안 베파를 만나지 않는다. 그러나 점차 베파의 아픈 가정사와 천재로서 느끼는 압박감을 보게 되고. 베파는 제노를 바닷가로 데려가 모든 진심을 털어놓으며, 바닷물 속으로 뛰어든다(!)


제노는 급박한 상황에서 수영 실력을 발휘해 베파를 구해내고... 코치에게 베파의 과게에 대해 듣게 되는데. 사실 물을 무서워했던 베파 역시 같은 1학년 시절, 물에 빠진 어머니를 구해내기 위해 수영을 해냈다는 사실! 제노는 그 시절의 베파를 이어 수영 천재로서의 가능성을 부여받게 된다.


마침내 수영 경기 날, 제노는 베파와 정정당당히 겨룰 수 있게 되지만.......... 마지막 순간! 멀리서 기권한 채 떠나는 베파가 제노에게 손을 흔든다. 친구와의 이별과 허무한 우승을 떠안게 된 제노의 모습에서... 끝이 난다.



- 관계를 파고드는 각본


우선 소재를 보자.


천재적인 친구를 동경하는 주인공,

두 고교생 운동선수의 경쟁,

천재가 갖는 외로움, 책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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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떠오르는 유사 소재의 작품들!


학원물이나 청춘드라마에서 자주 사용하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감상하고 난 뒤엔 흔한 이야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두 인물의 관계를 깊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두 주연과 코치, 단 세 명의 인물만으로 두 시간을 끌어갈 수 있다니...?! 그것도 제법 강렬하고 흥미진진하게 말이다. 학생 창작극의 수준이라기엔 아주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현실에 비해 과장된 지점도 있었지만, 배우들 연기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사소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두 주연의 관계는 어땠나?


처음에는 선배를 동경하는 후배,

중반부에는 그 선배에게 사기를 맞은 듯한 배신감...

후반부에는 왠지 애틋하고 끈끈해진 친구관계 그 이상까지 !


-> 관계의 변화가 꾸준히 일어나도록 쓰여진 것을 알 수 있다.



+ 코치 캐릭터의 다면적인 쓰임새 !

코치도 단순 조연의 역할만 수행하지 않고, 촘촘한 서사가 있었다.

과거에 지원리에서 자란 수영선수였다는 설정이 있는 듯한데... 때문에 베파를 천재로 키우고자 하는 지원리 실리주의적 어른의 대변자일 뿐 아니라, 천재가 되지 못한 선수로서의 복잡한 심정이 보였다.

조력자로 시작해서, 악역으로 변모했다가 다시 조력자가 되는 흥미로운 구성이 캐릭터로 뒷받침되어준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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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에 대한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보통 우정,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면 희망적으로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상당히 비극적으로 끝낸 점이 너무나 의외였고, 대담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허를 찔린 느낌이랄까...!


극을 쭉 따라가다 보면, 이 세상에 서로에게 단 둘 뿐인 우정 이야기(또는 주관적으로 깊게 해석한다면 사랑까지도...?) 로 느껴지게 되는데,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씁쓸한 맘으로 결말을 보게 되는 것이다...


어떤 비극 결말들은 힘 빠지고 허무하던데, 왜 이건 아니지?


그 답을 고민해 보건데, 아마도...


관객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흐름에서 반전을 주었기 때문인 듯하다.

이번에는 정말 제노가 베파와 겨루겠구나...! 하고 확신하게끔 흐름을 만들어준 뒤, 기대를 뒤집었기 때문!


물론 무조건 관객의 예상을 배신한다고 장땡은 아니다. 그 밑에는 잘 깔아둔 복선이 있다.

반전에서도 예측불가능한 베파의 캐릭터가 느껴져 납득이 가게 되고, 기권 탈락이라는, 앞서 소개되었던 방식을 다시 썼기 때문에 난데없지도 않다.


물론 지극히 개인 취향일 수도 있지만, (비극 조아..히히)

왜인지 비극 엔딩들은 이야기 전체를 조금 더 예술적으로 바꿔 놓는다.

주제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영화에서도, 예상치 못한 비극은 충격을 준다. 강렬함을 준다. 때문에 여운 역시 길게 남는다.


(+ 그 예시로...


1200x675.jpg 비극 반전 엔딩의 대명사, 셔터 아일랜드

셔터 아일랜드. 개인적으로 셔터 아일랜드의 주제나 내용의 깊이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강렬한 반전 엔딩으로 잊히지 않는 인상을 만들어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베파가 제노에게 마지막으로 손을 흔드는 장면도 색조명으로 강조되어 그런지, 사진처럼 뇌리에 남는 엔딩이었다.




이제 스토리 외 조명과 무대장치를 어떻게 활용했는가를 떠올려 보자.

조명의 창의적인 활용방법부터.


- 적극적으로 활용된 조명


KakaoTalk_Photo_2026-03-09-01-08-31.jpeg 젠장.. 무대사진을 좀 많이 찍어둘 걸 그랬다.


1) 조명의 움직임과 색

강한 색감이 그때그때 분위기를 빠르게 조성해주었다.

조명의 움직임도 분위기를 바꾸거나, 카메라 플래시를 표현하는데 쓰였다.

알맞은 시점에 적당한 음악도 함께 사용되어 더욱 좋았던.


조명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기묘한 효과음 같아서 좋은 순간도 있었다.


2) 핀 조명으로 공간 분리

무대의 다른 편에 서 있는 배우들을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듯 연출하고, 때로는 중요한 순간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핀 조명이 요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푸른 조명으로 바다의 절벽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시각적으로 보여준 것도 기억에 남는다.



3) 암전 상태의 강렬한 연출

능라촌 공연에서 꼭 한번씩 나와주는 시그니처 연출이 아닌가 싶다. 암전 상태로 사운드만 들려주는 클라이맥스 연출!

현실적으로 구현 불가능한 부분을 감추면서도,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좋은 방법이다.

-> 저예산으로 작품을 만들 때, 허접한 부분을 감춰야 한다는 약점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때로는 개성있는 연출기법을 발견할 수도 있다.


+ 특히 이번 극에서는 인물의 대사나 동작이 끝나자마자 (마치 영화에서 컷을 바꾸듯) 암전으로 씬을 바꿔주는 트랜지션이 좋았다. 극이 늘어지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이것들 모두 해당 연극만의 특징은 아니겠으나, 처음으로 연극 조명 분석(?)을 해본다는 취지에서 정리해 보았다.




- 소품 상자의 효율적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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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적은 소품과 무대장치를 아주 효율적으로! 제대로 뽕을 뽑았다는 느낌이었다.


두 개의 나무 상자는 극 내에서 의자로도, 절벽으로도, 병원 대기실로도 쓰인다. 마지막 후반부에는 상자를 뒤집어 뒷면에 붙여 둔 숫자를 보여주므로서 수영 경기장의 레인으로도 활용되는 작은 반전이!!


무대 가운데에 엎어 놓은 책장 역시 비슷하게, 공간에 따라 다른 장치로 활용되었다.


원래 보통 학생 연극에서는 이런 식으로 뭐든 표현 가능한 무대를 만들곤 하나? 연극을 잘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암튼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던 부분.




- 결론: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연출?

-> 미니멀리즘!


굉장한 기술과 장비가 없다면? 차라리 가장 효율적으로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유연한 무대장치를 활용하라! 는 교훈을 얻었다.


무대 전체 색감을 바꿔버릴 수 있는 조명을 적극 활용하고, 조명이 많은 공간에 영향을 주도록 여백을 남기는 것이다. 오히려 자잘한 군더더기가 없기에, 무대가 어떤 공간이라고 설정해도 관객의 상상력이 빈 곳을 채울 수 있다. 연극적인 신비함이 거기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무대 일부를 내가 상상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 말이다.


영화 <도그빌>에서도 그런 기법을 찾아볼 수 있다.


%EB%8B%A4%EC%9A%B4%EB%A1%9C%EB%93%9C.jpg?type=w966 <도그빌>의 세트장


<도그빌>은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지만, 모두 실내에서 촬영되었다.


텅 빈 창고같은 공간에 분필로 그린 건물들. 이 연극 무대 같은 환경이 처음에는 이질적이지만, 뒤로 갈수록 각자의 방식대로 이 마을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관객과 소통하는 하나의 신박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작비 절감 때문이었을까?

주제를 강화하기 위한 선택이었을까?

강렬한 아이디어를 위한 실험이었을까?


어떤 의도에서 출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 마리 토끼를 다 잡는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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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라촌의 창작극 <수재> 후기에서 시작해

스토리와 무대에 대한 분석,

창작자 꿈나무로서 얻은 교훈들까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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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대학로 연극을 찾으시는 분들께는 능라촌에서 열어주는 정기 공연들을 매우 추천드립니다! 매번 갱신되는 퀄리티로 깜짝깜짝 놀라게 하더라구요.


공연팀 분들께는 배워갈 점 많은 연극을 올려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정말이지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앞으로의 공연들도 기대 많이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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