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끝나는 이야기들

[열린 결말] 끝이 곧 시작

by 스토리광공

세상에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을까?


GmY12Rhd3be_DIe8_lLogrgk7vtEwfzo1GYyZ4C8mzncNEZH76miRoqPBdsNHcLOuvldqPrZocjMUisgPtuABg.jpg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로버트 맥키가 플롯을 분류한 방식!


많은 학자들이 이야기를 원형에 따라 분류하려는 시도를 했겠지만, 저는 분명 무한한 형태의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형식과 틀에 얽매이지 않고 싶지만……

덕후로서는 재미삼아라도 세상에 과연 몇 가지 이야기의 형식이 있을지 세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이런 이유로, 바로 오늘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재미로 해 보는 실험이 될 것입니다! 전문적인 연구 X)



가짓수는 무한하다 !


우선, 저는 이야기의 유형에는 총 몇 가지가 있다! 하고 확실히 정해둘 생각이 없습니다.


이야기의 형식은 시대에 따라, 유행에 따라, 매체의 정해진 틀에 따라 진화하고 진화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이야기의 가짓수는 앞으로 영원히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 개씩 세어 보는 식으로 해보도록 하죠!


오늘은 바로 그 첫 시간이니, 시작의 의미를 담아서

<<시작되며 끝나는 이야기>> 들을 가져와 보았습니다.



보통의 상업적인 이야기들은 어떤 일이 시작되며 이야기의 장을 열고는 합니다.


로맨스 영화라면 남주와 여주가 서로를 만나야 할 테고, 벌써 티격태격거려야 영화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들죠. 그 뒤에 남주와 여주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사랑의 방해꾼의 등장으로 나머지 분량이 채워질 테고요.


하지만 이 영화는 다릅니다!

(스포일러 주의)


접속_포스터.jpg <접속> 1997

<접속>은 라디오 프로그램 PD인 남주와, 라디오 음악 신청자였던 여주가 PC 통신을 통해 고민을 나누며 서로를 향한 호기심을 키워나가는 로맨스 영화입니다.


놀랍게도 두 주인공은 영화 내내 만날 듯 만나지지 않고, 스쳐지나가기만 합니다. 오히려 서로가 아닌 다른 로맨스 상대와 이런저런 일을 겪기도 하죠.


하지만 두 사람이 어렵게 서로를 처음으로 만나는 과정을 우여곡절로 그려내, 관객으로 하여금 그 만남을 간절히 바라고 기대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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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가 남주를 기다리고, 몰래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남주. 이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지요.


두 주인공의 만남을 영화의 최후반부로 미뤄 놓은 구성으로, 무엇보다 <접속>의 주제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나게 된다.

이토록 스쳐지나가는 것 같기만 해도, 꼭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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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인공이 처음으로 서로를 만나고,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에 영화가 끝난답니다. 고도의 열린 결말이네요.


앞으로의 일들이 어떻게 펼쳐질 지는 몰라 두렵지만, 동시에 '어떤 것의 시작'이라는 희망찬 느낌도 듭니다. 사랑의 시작이 딱 그런 느낌이겠지요.




동일한 문법을 매우 다른 이야기에 활용한 소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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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인데요!

영화로도 나왔었지요. 개인적으로는 소설을 훨씬 추천드립니다!

아일랜드 수녀원에서 어린 임산부들과 아동들을 강제로 노역시킨 역사를 고발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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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에드워드 펄롱은 석탄을 파는 일을 하던 중 수녀원 창고에 수상하게 갇여 있는 소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소녀를 수녀원으로 다시 데려다 준 뒤 죄책감을 느끼고, 수녀원장으로부터 무언의 입막음을 당하기도 하죠.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초중반부는 주인공 펄롱의 찝찌름한 일상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수녀원의 진실을 애써 모른척하며 살아가는 지역 사람들과 펄롱의 넉넉치 않은 형편,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잔잔히 보여 주는 구성입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펄롱은 용기를 내어 수녀원의 소녀를 집으로 데려가기로 합니다.



72651_55201_517.jpg 펄롱이 소녀를 데려가는 장면


펄롱이 소녀를 안고 마을 사람들의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점차 용기와 희망을 얻는 내적 성장으로 이야기는 결말에 다다르지요. 그리고 소녀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에서 끝이 납니다. 영화 전체가 '변화를 일으키기로 결심하는 과정'의 이야기인 것이죠.


소녀를 데리고 들어간 집안에서 가족들의 반응이나 펄롱의 삶이 변화할 모습은 전혀 예상할 수 없습니다. 그저 그의 선택이 옳은 것이기를… 바라게 되죠.


하지만 바로 그런 위태로운 희망이 어려운 현실에서 옳은 일을 하려는 이들의 심정을 진솔하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접속>과 마찬가지로 이야기의 핵심에 있는 주제를 훌륭히 드러내는 포맷이군요.




주인공이 일으킨 변화로 시작해야 한다... 는 이야기 공식의 편견을 깬 작품들이네요. 오히려 최고로 기대되는 순간들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독자와 관객의 상상력에 맡기는 편이 주제와 맞아떨어질 때 아주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이런 형식의 <무언가가 시작되는 열린 결말>을 반만 사용한 작품들도 있습니다!


- 이야기는 끝, 관계는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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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표류기> / <프린세스 스타의 모험 일기>


먼저, 김씨 표류기는 혹독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남자 김씨가 한강으로 몸을 던졌다가 밤섬에 표류당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중심이 되는 내용은 남자 김씨가 짜장면을 만들어 먹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밤섬에서 생활을 꾸려 나가는 것이고, 바깥을 내다 보다가 남자 김씨를 우연히 발견한 히키코모리 여자 김씨가 그를 도와주게 되죠.


그 과정에서 여자 김씨는 조금씩 세상을 향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남자 김씨는 스토록 원하던 짜장면을 만들어 먹으며 크나큰 성취를 이룹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순간, 밤섬에서 쫓겨나게 된 남자 김씨는 그간 이룬 모든 것을 잃고 허탈함에 휩싸이게 되고.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나 싶지만....


남자 김씨를 찾아 달려나온 여자 김씨와 처음으로 만나게 되며, 영화는 희망차게 끝이 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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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

이처럼 메인 주인공의 우여곡절과 성취를 위주로 따라가다가, 또 새로운 맥락의 시작을 보여주며 끝을 낼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목표가 좌절된 뒤의 새로운 시작... 이라는 구성은, 과거의 실패를 딛고 일어난다는 영화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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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두 번째 예시 작품도 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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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모험 일기>는 다양한 마법 세계를 넘나들며 악당들과 싸우고, 마법 세계의 적폐를 타파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축적된 사랑의 감정이 두 주연 인물들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어 가게 되죠.


<접속>과 마찬가지로 두 주인공이 이어질 듯 말 듯, 서로에게 고백할 듯 말 듯한 상황을 작품의 끝까지 이어가다가 최후 엔딩의 순간에 그간의 긴장감을 폭발시킵니다.



opinions-about-the-ending-of-svtfoe-v0-8u7bq34hdffc1.png 마지막 순간, 서로를 다시 발견한 두 주인공.


로맨틱한 메시지가 짙게 담긴 이 엔딩은, 우리가 그간 보아 왔던 모험 이야기를 새로운 의미로 전환시켜줍니다. 차원을 뛰어넘은 사랑과 우정으로 서로를 찾아가는 이야기로 완성된 것이죠.


또한 마법 세계의 여주, 현실 세계의 남주가 재결합하는 모습은 여러 차원의 세계가 하나로 합쳐지며 이룰 조화와 결합을 희망적으로 그려 줍니다. 비록 상상에 맡겨야 하지만, 앞으로 둘의 사랑과 미래가 기대되네요....




결말은 반드시 어떤 일의 끝으로만 쓰여질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그려줌으로써 희망을 품고 끝을 낼 수 있지요.


약간의 불안, 약간의 긴장감이 동반된 것이 희망찬 열린 결말의 백미가 아닌가 싶네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도 앞으로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니!


이야기의 첫 번째 유형으로, <<시작되며 끝나는 이야기>>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번에는 또 어떤 유형을 찾아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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