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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을 걸어나가기 위해

시네마천국 이머시브 특별전

by 달몰이

2024년 12월 20일부터 2025년 3월 30일까지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소재한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더서울라이티움에서 선보이는 전시회 '시네마천국 이머시브 특별전'은 이탈리아의 수많은 명작 중에서도 특히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아 온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영화 <시네마 천국>을 재해석한 공간 구성에 음악 감독인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음악을 더하여 완성한 몰입형 전시로, 알프레도와 토토의 <시네마 천국>을 추억하는 전 세계의 모든 영화 팬들을 위해 여러 국가에서 순차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들려오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Love Theme'과 영화에서 실제 영화에 사용된 소품들, 몰입형 전시라는 컨셉에 맞춰 전시장 곳곳에서 <시네마 천국>의 조각들을 상영하고 있는 작은 시네마들,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사진과 포스터, 쥬세페 토르나토레와 엔니모 모리꼬네의 만남과 그들의 관계에 대한 독특한 스토리까지 '시네마천국 이머시브 특별전'은 모든 공간이 <시네마 천국>이라는 영화에 대한 향수로 가득했고, 전시회를 관람하며 떠올릴 기억이 저마다 상이할 모든 관람객을 위한 하나의 선물처럼 느껴졌다.


전시장 내부는 총 15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공간마다 한편으로는 영화 밖에서 영화 속 순간들을 조명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 안에서 바깥의 현실을 체험하게 되기도 한다. 전시회가 마련해 놓은 짧은 여정을 알프레도와 토토, 그리고 다른 등장인물들과 함께하며 영화 속 이름 모를 한 인물이 되어 걸어볼 수 있었고 마침내 <시네마 천국>을 관람했고 또 그대로 흘려보냈던 과거의 내가 되어볼 수도 있었다.


전시회의 마지막 순서에서 관람객들을 떠나보내며 남겨진 짧은 편지가 있었다.


세상의 모든 토토에게. 우리 모두가 자신의 영화 속 토토임을 잊지 않기를. 네 꿈을 찾아, 다음 문을 열길 바라며.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인생 속에서 하나의 시네마 천국을 완성하기 위해 걸어가는 토토이며 동시에 영화를 좋아하는 소년에서 영사 기사로, 영사 기사에서 영화감독으로 나아간 토토의 꿈 그 자체를 간직하고 있는 존재들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모두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꿈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며 그 꿈을 실현하는 사람의 수는 더욱 적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바로 그러한 꿈을 꾸었던 과거의 자신을 이따금 추억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맥락의 동일 선상에서 이번 전시회 <시네마천국 이머시브 특별전>을 관람하기 위해 관람 당일 하루 전날 영화 <시네마 천국>을 다시 보고 난 후, 나는 문득 토토라는 인물이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인 모모와 어딘가 닮아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정확히는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관계가 떠올랐다.


어른과 아이의 사랑은 내게 언제나 퍽 특별하게 다가온다. 토토와 알프레도의 사랑은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사랑과는 어쩌면 정반대의 형태로 그려졌다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의 사랑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들의 사랑은 무엇보다도 아름다우며 그 아름다움 밑에는 실패한 성공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알프레도는 왜 토토에게 자신의 유품으로 과거 신부의 검열로 인해 삭제된 영화의 키스신들을 모아놓은 필름을 남긴 것일까. 그것은 키스신이 당시의 시대상이나 한 신부의 관점에서는 영화를 실패로 만드는 요소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쇼트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는 알프레도가 포함될 수 있고 토토가 포함될 수 있으며 키스신을 촬영한 영화감독과 배우들이 포함될 수 있고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알프레도의 부고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 토토에게 그의 어머니는 "내가 전화할 때마다 다른 여자가 받더구나. 그런데 그 여자 중 누구도 진심으로 널 사랑하지 않는 것 같더라."라고 말한다. 비록 감독판에 추가된 내용에서는 토토와 엘레나가 재회한 뒤 끝내 엘레나가 이별을 고함으로써 그들의 관계가 끝을 맺게 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토토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엘레나라는 인물이 반드시 요구되며 그녀가 없이는 토토의 인생이 평생 미완성을 남겨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토토의 어머니가 위와 같은 말을 남긴 것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키스신이 영화를 완성시키는 것과 같이 엘레나가, 엘레나와의 재회가 토토의 인생을 완성시키고 로자 아줌마와의 사랑이 모모의 인생을 완성시킨다. 비록 알프레도의 말처럼 토토에게 있어서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두고 떠나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고 하더라도, 로자 아줌마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에서 하나 남은 유대마저 잃어버린 모모가 결국 자신의 집을 떠나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고 하더라도 모모가 로자 아줌마의 임종을 지키며 자신의 사랑을 완성했듯이 토토 또한 엘레나와의 재회를 통해 자신의 사랑에 마침표를 찍었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나는 전시회에서 감독판의 추가된 내용을 확인한 후 알프레도에 대한 토토의 원망에 공감할 수 있었다. 알프레도가 토토를 위해서 엘레나가 영화관을 찾아왔던 사실을 숨겼다는 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 아닐까. 그러나 언젠가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 다시 <시네마 천국>을 보게 되는 날에는 어쩌면 알프레도의 시선에서 토토의 인생을 응망하며 알프레도가 느꼈던 사랑을 보다 또렷하게 깨닫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명작이라고 불리는 모든 영화가 그러하듯이.


그러나 완전한 성공이란 존재하지 않고 언제나 실패가 뒤따르는 성공이었기에 <시네마 천국>과 <자기 앞의 생>이 보여준 사랑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들의 사랑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영화를 보는 내내 누군가에게 실패로 남았던 꿈과 사랑이 눈앞에서 토토와 알프레도를 통해, 모모와 로자 아줌마를 통해 펼쳐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녀는 이제 숨을 쉬지 않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숨을 쉬지 않아도 그녀를 사랑했으니까. 나는 그녀 곁에 펴놓은 매트에 내 우산 아르튀르와 함께 누웠다. 그리고 아주 죽어버리도록 더 아프려고 애썼다. 내 주위의 촛불이 꺼졌다. 나는 다시 불을 붙였다. 촛불은 여러 차례 꺼졌고, 나는 다시 불을 붙이고, 또 불을 붙였다.



불타는 사랑 뒤에는 재가 남았고 병사가 공주를 위해 기다린 99일 뒤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약속이 남았다. 자기 앞의 생을 걸어나가는 과정에서 이미 촛불은 수차례 꺼지고 말았지만 다시 불을 붙이고, 또 불을 붙이는 모모의 마음으로 <시네마 천국>을 찾게 될 순간이 올 것이다. 영화를 다시 보고 있으면, 더는 숨을 쉬지 않는 내 꿈마저도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때를 위해서 잠시 동안 토토와 알프레도에게 나의 <시네마 천국>을 맡겨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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