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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4

항상 사유하라

by 이문웅

나는 구도자다. 나는 사유한다 고로 이동한다.

나는 가난하다. 나는 가진 것 많은 가난뱅이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스스로 버림받은 행복한 구도자다.


나는 오늘도 세상을 본다. 보면서 깨닫고 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물을 보고 듣고 호기심 발동하고 관찰하고 알고 인식하고 깨닫는 과정을 항상 반복하게 된다.

그런데 사유(思遊)를 하다 보면 생각에는 끈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끈을 놓지 않고 혹은 부여잡고 깊이 혹은 바위를 오르듯 가야만 한다.

그 끝에 놓여 있는 시원한 결론이 바로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시원해서 다른 논리로 반박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반박할 수 있다면 진리가 아니다.

사람들은 간혹 진리를 상대적 진리와 절대적 진리로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은 진리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는 하느님이다.

어떤 생각을 깊이 골똘히 하다 보면 기 깊이의 끝에 다다르게 된다.

어둠의 세계든 빛을 세계든지 당신의 결론은 진리의 하느님인 것이다.


인생에서 희망은 살아가는 원동력이자 진리다. 사람에게 희망이 없다면 그것은 죽음과 같다.

오늘을 사는 소확행자들이 작은 행복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단지 더 큰 희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하루하루의 작은 행복이라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절박함인 것이다.


그런 것을 마치 언어의 놀이꾼들은 아주 봇물 터진 것처럼 소확행을 향해 살자는 말을 구호처럼 내뱉는다.

일찍이 공자께서는 스스로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고 하셨다.


이런 일은 직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직장상사가 하기 싫고 귀찮거나 못하는 일을 부하직원에게 맡기고 자신이 비난을 피해 가는 사례들은 나로부터 시작해서 많다.


우리는 왜 사유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 사유하는 과정에서 지치지 않기 위해 사유(思惟)가 아닌 사유(思遊)를 해야 하는지는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공자께서는 일찍이 하루에 세 번 반성하는 삶을 살라고 하셨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항상 사유하며 살라는 것이다. 사유는 즐겁게 해야 지겹거나 지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일을 하고 있든지 사유하는 세계와 일이 함께 만나면 일의 속도와 결과가 엄청나게 다르게 도출된다.


그래서 우리는 사유하며 살아가야 한다.


왜냐면 인간은 동물이지만 생각하는 뇌를 가지고 있는 지능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동물이 아닌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유하지 않으면 동물적 본성을 갖게 된다.


그래서 공자 께세 인간의 단계를 말씀하실 때 가장 낮은 25번째의 인간을 육인(肉人)이라고 하셨다.


깨닫는다는 것은 문을 열고 닫는 것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계속적인 사유의 광장을 걸어 다니다 보면 어느새 깨달음의 영역에 들어서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증거는 바로 단어의 확장으로 증명된다.


못 믿겠다면 지금 바로 그런 나의 시간을 마련해 보라.

내가 지낸 지난 이십 년은 바로 그런 좌충우돌의 사유의 산맥을 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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