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고치러 서비스센터를 찾아갔다. 번호표를 뽑고 잠시 기다리고 상담을 한 결과 노트북 사망이란다. 나는 키보드와 배터리 교환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해서 찾아간 건데 메인보드가 나갔단다. 여러 번 그렇지 않을 거다 이거 별로 오래 사용 안 했다고 했더니 언제 샀냐고 해서 언제 샀다고 했다. 그때 이걸 매우 싸게 사기는 했지만. 결국 수리원은 내가 바보인양 큰소리를 또박또박 소리 내서 전달을 하며 노트북 사망을 선고했다. 그래서 메일 보드 교체는 얼마냐고 물었더니 70만 원 정도란다. 나는 그 돈 가지면 노트북 두 대를 사겠다며 다시 조립해 달라고 했고 낙심한 마음에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갈 때는 택시를 탔는데 올 때는 버스를 탔다. 노트북은 교체해야 하는데 돈은 없으니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으리라.
오다가 마침 점심때라 유정에게 전화를 해서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함께 식사를 했다. 그와의 오늘 대화는 거의 반지성주의 시대라는 어느 신문의 칼럼 내용이었다. 얘기인즉, 그 칼럼의 내용은 "요즘은 반지성주의 시대"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잘못짚었다. 세상은 반지성주의가 아니라 상실의 시대인 것이다. 무라야미 하루키가 말한 상상처럼 우리는 본래의 것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것이지만 그것 역시 어쩔 수 없이 물들어 갔던 것이었다. 만약 역사적으로 아니 지금 우리의 것을 지키며 음악을 만든다고 했을 때 당신은 노래방에서 판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나의 가정이 조금 억지스럽긴 하지만 그가 말하려 하는 반지성주의라는 것은 어찌 보면 자본주의가 개인주의를 만연하게 만들었다면 황금만능주의 시대 속에 현재의 금융자본주의 시대는 개인주의가 더 이기적 정신 상태와 만나 개별주의화 되어 가면서 벌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개별 주의는 결국 나 혼자 산다, 아기 안 낳는다, 나만 잘살면 돼!, 자만주, 소소한 행복 등의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항상 말하는 것이지만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그러나 모든 동물은 생각한다. 그것이 저차원적이든 고차원적이든. 얼마 전에 어느 새가 수도꼭지를 열었다 잠궜다하며 물을 먹는 영상을 본 적이 있고 동물들이 서로 돕는 하물며 천적 관계에서도 배가 부른 지 잡아먹지 않고 위험에서 살려주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렇듯이 동물들은 모두 생각한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물며 우리가 먹는 단백질의 원천들인 소, 돼지, 닭도 생각한다. 하물며 인간이 어떻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인간은 지성을 지향한다. 누구나 똑똑해지고 싶어 하고 자신이 할 수만 있으면 더 많은 지식을 갖기를 원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이런 인간의 본질은 글을 배운 자들이 평생 어떤 책이나 정보를 학습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얘기다.
반지성주의 시대라는 말은 그래서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산업화도 기술 지식을 통한 지성인들의 발명과 개발이 없었다면 물가 능했고 80년대의 민주화의 시작은 대학과 화이트 컬러들의 지성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땅시 집단 지성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며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있던 지성이 지성을 반대하는 주의로 바뀐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것들과 이성적 판단을 많이 상실한 채 살아간다.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이 가졌던 문화는 사실상 이제 거의 일반인들에게는 소멸되어 버렸다. 이것은 근대화 과정과 산업화과정에서 오는 필연적인 현상이기는 했다. 그렇게 변하는 것이 우리에게 지성이 사라져서 생기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저 지금 필요하지 않을 뿐이고 더 좋은 것들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반지성주의라는 주장을 굳이 함께 하자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판단 기준이 생명과 공동체 발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을 주무르는 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논리에 그냥 모든 것이 억지로 끼워 맞춰져 가야만 하는 과정에서 지성은 사라진다.
오늘 서비스센터를 다녀오며 버스에서 길거리 현수막을 본다. 현 정권을 몰아내려는 자들의 천만 국민 서명운동의 현수막이었다. 그냥 씁쓸했다. 그들이 어찌 보면 지성의 시대에 사는 반지성주의자들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 칼럼이스트의 주장을 위로하고 싶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 수리원이 노트북의 사망을 선고한 후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와 티브이도 없는 방안에 들어서서 스마트폰만 만지작 거리다가 노트북 안의 데이터를 어떻게든 옮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노트북을 꺼내 다시 켰다. 고장 화면이 그대로 나왔다. 바이오스를 초기화하려면 F2를 누르시오. 나는 화면을 누르고 할 수 있는 상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나의 자성으로 노트북과 교신했다. 그리고 노트북이 부활했다. 나는 웃으며 글을 쓴다. 하하하하하하 더 웃게 만드는 것은 얼마 전 대통령이 반지성주의라는 단어를 썼다는 것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웃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