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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가 안 나온다.

by 이문웅

첫눈 내리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바람에 날리는 눈발은 오랜만에 작은 오피스텔에 보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날인 것을 까마득히 모른 체 잠들었고 나는 새벽에 일어나 놀랄 상황에 마음이 부산하다.


하지만 어떤 노력도 해볼 수 없는 새벽,

나는 생각에 잠긴다.


이런 불가항력에 놓일 때 사람들이 하는 행동에는 여러 성향들이 있을 것이다. 누구는 인터넷을 찾아보고 누구는 여러 가지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것이고 누구는 관리실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시골 어느 작은 집이라면 더더욱 당황스러울 것이다.


하여튼 이런 상황을 생각하며 나는 각종 불가항력에 놓이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잠시의 먹먹한 정적이 흐른다.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은 그렇게 환경의 동물이다. 환경에 따라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모두 달라지는 환경적 생물체다. 사실상 말의 어감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그런 상황에 놓이는 불가항력의 순간을 생각하니 끔찍하다.


세상의 약자들은 그렇게 생각을 혹은 희망을 끊어버리는 것일까? 아무리 해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삶의 끈을 놓아버리게 되는 것일까?

살아간다는 것과 삶에 집착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는 체념 섞인 생각은 이런 상황에서 그리 잘못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수도를 틀어놓고 냉수와 온수 쪽을 왔다 갔다 하다가 그냥 열어놓고 몇 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생각은 거의 포기 수준으로 기온이 좀 올라가면 나아지겠지!

잠시 이불 속에 들어가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수도관 얼었을 때, 수도관등의 검색어로 나만의 노력 같은 노력 아닌 노력을 하는 순간 열렸던 수도관에서 촤악.,. 추추축 추추죽하는 소리와 함께 졸졸졸 나오기 시작한다.


나는 상상한다. 사실 나는 문제가 있을 때 내 탓을 먼저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요즘 변기에서 자꾸 소리가 나서 변기 수도관 밸브를 잠갔다 열었다 하며 사용을 하는데 어제 갑작스러운 추위에 얼었다고 아차 하며 나를 탓하고 있었는데 물이 나오기 시작하니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설거지라니. 나도 이제 주부가 다되었다. 설거지를 하며 이만한 환경도 안 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겠지라는 생각은 나의 남은 삶을 더 겸허하게 만들며 다시 새로운 날을 기다리며 하루를 맞는다.


우리가 겪는 수많은 일들은 그저 일어나는 것일 뿐 작은 것에 운명을 대입시키지는 말자. 혹여 어제도 오늘도 나의 삶이 나의 생각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나를 탓하며 내 마음에 상처를 내지 말자. 한 번뿐인 인생은 그저 한 번 왔다 갈 뿐이다. 그리고 그 인생이 잘 기록되는 삶이 있고 그저 그런 생명체로만 왔다가는 삶도 있다.


얼었던 수도관에서 잠시 후 수돗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처럼 오늘 잠시 기다리면 내일은 더 밝은 햇살이 수도관을 녹여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모든 얼어있는 혈관들이여!

서로 사랑하라!

얼어서 닫힌 마음이 콸콸콸 열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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