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이에 관하여

현 상황을 개탄하며

by 이문웅

"오늘은 너 나이 먹어봤냐? 나 나이 먹어봤다." 서유석의 노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이 짧은 질문과 대답 속에는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회상과 삶의 깊이가 담겨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가 늘어나는 과정일까? 아니면 시간과 경험이 축적되면서 삶의 본질을 조금 더 깨닫게 되는 여정일까? 최근 들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새삼스럽게 되새기게 된다. 한때는 단순한 위로처럼 들리던 이 말이 이제는 그 안에 담긴 진정한 의미가 이해되기 시작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세월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무게를 견디며 쌓아온 경험, 때로는 실패를 통해 얻은 배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자신만의 가치들을 더해가는 시간이다. 숫자로 표현되는 나이는 단지 외적인 것이다. 진정한 성숙은 그 안에 쌓여가는 내적인 변화에 달려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또 다른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쇠퇴하고 사라지는 과정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이 있는 향기와 의미를 담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익어가는 삶이란 단순히 외형적으로 보이는 성과나 지위를 쌓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풍요를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이 익어가는 삶을 살지는 않는다.

늙어가는 것이 탐욕으로만 채워진 사람이 된다면, 그 삶은 텅 빈 껍질과 같을 것이다. 세상의 많은 이들이 돈과 명예를 추구하지만, 그것들이 탐욕으로 얼룩질 때 그 안에 담긴 빛은 사라지고 만다. 돈과 명예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그 안에 담긴 품격과 진정성에 따라 빛을 발한다. 탐욕에 물든 삶은 결국 외로움과 허무함만을 남길뿐이다. 물질적인 성공은 순간의 만족감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행복과 평화는 마음의 성숙에서 비롯된다.

살며 사랑하며 배운다는 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깨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귀한 태도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깊이 이해하며, 매 순간을 진정성 있게 살아가는 이들만이 사랑을 통해 배우고, 배움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이러한 지혜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사랑과 배움을 삶의 중심에 두는 이들에게만 허락된다.

나는 단순히 나이를 먹는 사람이 아니라, 어른이 되고 싶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지 세월을 지나온 것이 아니라, 세상의 아름다움과 고결함을 올곧게 말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청춘을 그대로 간직한 노인, 바로 그런 이들이 진정한 어른이다. 그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빛나는 지혜를 전한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그런 어른이 절실히 필요하다. 현재의 혼란은 산업화와 민주화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자 과제일 것이다. 입법 독재와 독단적 행정,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대한민국의 현실은 다시 한번 성숙한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혼란스러운 대중의 야유와 외침이 아니라,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성숙한 민주주의가 우리의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돌이켜보면, 과거 나라에 우환과 근심이 깊을 때 대나무 같은 절개로 세상을 꾸짖고, 교훈을 내려주던 어른들이 있었다. 그런 어른들이 오늘날의 자유 대한민국에도 다시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겸허히 소망한다.

나이를 먹어가며 나는 깨닫는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지나온 시간을 단순히 돌이켜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익어가는 데 있다. 나는 나이가 드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더 깊이 있는 삶의 가치를 찾고 싶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며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숫자로 측정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책임감과 지혜로 가득 찬 삶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너는 나이를 먹고 있는가, 아니면 익어가고 있는가?" 이 질문에 진솔하게 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