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사슬로 평화를 묶어두고,
그 쇠사슬을 끊을 수 없다는 믿음 속에
우리는 여전히 무릎 꿇어 있다.
국가라는 감옥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구속하며
자유를 꿈꾸었다.
그러나 그 꿈은 구속의 그림자 속에 잠들어,
빛을 볼 수 없었다.
히틀러가 민족을 부르며
죽음의 씨앗을 뿌렸을 때,
그 씨앗은 민족이라는 이름 속에서 자라나
불꽃이 되어 타올랐다.
그 불꽃은 뼈와 살을 태우며
영혼을 먹어치웠다.
민족의 이름으로 태어난 불꽃은,
타오를수록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밀려들었다.
‘한민족’이라는 호칭은
더 이상 사람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그 이름은 우리를 가두는 울타리였고,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모른 채 지나쳤다.
'우리'라는 말속에 숨겨진
'너'는 이미 잊혔고,
그 자리에 '우리'라는 신기루가
서서히 굳어갔다.
민족은 통일을 말하지만,
그 통일은 결코 온전하지 않다.
통일이라는 거대한 그림은
실체 없이 떠도는 그림자일 뿐,
그늘 속에 숨겨진 칼날이
우리를 가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 그림자의 길을 따르며
서로의 등을 겨누었다.
통일은 끝내 허상이었고,
그 허상 속에서 우리는
죽음을 키웠다.
민족이 주는 뜨거운 통일은
한 점 불꽃처럼,
차갑게 식어버린다.
그 뜨거움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 자신만의 길을 떠났고,
다시 만날 수 없었다.
그 불꽃은, 결국
우리를 태운 채 사라졌다.
민족의 울타리를 넘어서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우리는 그 울타리 밖에서
진정한 인간의 얼굴을 찾을 수 있다.
피부색, 언어, 음식의 차이가
이제는 그저 바람에 날리는 먼지일 뿐,
우리는 사람으로서
서로를 안을 수 있다.
민족이 세상의 평화를 죽였다.
그 죽음은 하나의 길이었고,
우리는 그 길을 끝내 걸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죽음의 그늘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민족을 넘어,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세상의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
평화는 더 이상 이름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오직 사람 안에
사람과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