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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2에 관하여

비판에 관한 비판

by 이문웅

우선 예술 비평에 대한 세계를 존중하며 이 글을 쓴다. 그러나 냉엄한 현실 속에서 그릇된 예술과 편파적 해석이 낳게 될 오류의 재생산 과정에 힘들어하는 대한민국의 정신세계를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으로 이 글의 명분을 얹으려 한다.


우선 오징어 게임 2는 여전히 현실 세계를 반영시키려 노력한듯하다. 인간은 오징어 게임이 처음 나왔을 때 인간의 내면세계에 숨어있는 사악하고 혹은 선하고 싶고 혹은 이기고 싶고 혹은 이타적이면서 동시에 이기적인 상황을 영화 속에서 질펀하게 느끼면서 열광했다.


그리고 아카데미상의 감독상을 타면서 오징어게임은 마치 내 가족이 자랑스럽듯 대한민국 사람들은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이 사회 속에서 오징어의 이야기들을 크고 작게 보고 견디고 인내하고 슬퍼하고 때론 잠시 웃으며 잠시 만족하며 또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대한민국의 일상이 오징어 게임이 된 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마치 오징어 게임의 게임 그만두기 투표를 하는 배우와 똑같다. 지금 벌어지는 계엄과 탄핵이라는 구도도 여전히 똑같은 모양이다.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학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체 2차 탄핵까지 마쳐버린 이들은 이미 오징어 게임의 동조자들이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의 감독은 버전 1과는 다르게 욕심이 많아진듯했다. 그 역시 예술로써의 감독 자유였지만 평소 같았으면 다양한 면을 모두 고발하고자 하는 의도였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세상이 극명하게 둘로 갈라지는 시점에서의 감독은 마치 푸른 동그라미인듯하다.


그래도 영화는 영화이기에 영화를 보는 입장으로 돌아가보려 하지만 본래 가지고 있던 신비성보다는 잔인성이 더 드러나고 마치 강도가 살해 장면을 보며 불편해하는 심정으로 내가 불편해지는 것은 나의 성선설이 작용하는 탓일지도 모른다.


오징어 게임 2는 여전히 분홍부대들을 신비 속에 가린 채 잔인한 묻지 마 살인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것도 보통의 일상이 아닌 지금 시점에서 마치 계엄군이 그렇게 할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시점이 참 유감스럽다. 그러나 영화 오픈 러닝 시점이 지금이라는 것에 나는 감독의 의도성을 엿보게 된다.


그래도 결국 나는 순수한 민주주의로서 오징어게임을 보고 즐길 수 있다. 항상 예술은 일반보다는 특수를 기반으로 보편적 감동을 자극하게 된다는 것을 믿고 감독의 고뇌를 찬양한다.


예술은 수정처럼 맑아야 하고 물처럼 투명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 속으로 빠져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의 전편이 그랬고 미나리가 그랬다. 마치 후편이 나오면 실패한다는 영화계의 징크스가 그렇듯이 오징어게임은 현재 고전을 겪고 있다.


하지만 감독의 이런 의도성이 기우이고 나만의 질주라면 오징어 게임 2는 이 세상을 거의 완벽하게 담아내고자 한 듯하다. 마치 오징어게임을 끝내고 자하는 의도가 엿 보인다고나 할까?


몰아보기로 오징어 게임을 보는 동안 사실 올라오는 화가 나를 혼자 웃게 만들었다. 이정재와 오일남이라는 잔인한 감동은 오징어 게임 전편의 핵심적 전달 요소였다면 오징어게임 2(아직 시작이지만)는 이정재의 선과 이병헌의 병적 사악함이 이야기의 궁금증보다는 바보스런 인간들이 보인다. 이 두 사람의 캐릭터는 마치 지금 탄핵전쟁을 조장하고 있는 한 정치인의 내면처럼 참 불쌍하게 느껴졌다.


이렇듯이 오징어게임 2는 그 발매시기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어놓은 계절상품이었다. 나는 이런 이유가 영화를 사랑하고 순수 예술을 기다리던 글로벌 관객들로부터 그리 좋지 않은 평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우리 정신세계에는 가운데라는 의식이 있다. 그래서 우리의 최대 명절은 역시 중추절이었고 더도 말고 덜도 말라는 조상들의 지혜였다. 지금 우리가 오징어게임 2를 보면서 마치 세상이 그토록 잔인하고 나의 내적 세계가 그렇게 병들어 있다는 병약한 생각은 금물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동물이고 생존 본능을 가진다. 그런 인간이 제대로 배우지 않고 자본주의 기능만으로 살던 사람들을 모아놓은 것이 이 영화의 시작이었다.


그만큼 그들은 이미 인간미를 잃고 살아가던 사람들이었고 오히려 잔인한 죽음의 과정을 거치며 인간성을 회복해 나가는 배움의 과정이었다.


오징어 게임 2가 더 전개되어 나갈 때 편향적 생각보다는 인간적 본연의 욕구와 감성에 있는다면 영화는 때론 잔인해도 때론 이타적이어도 불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오징어 감독의 개인적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낸지라 그저 이미 편향성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마치 선(善) 인양 착각하지 말라고 권유하고 싶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 2는 예술로써 여전히 입맛을 당긴다. 왜냐면 이제 이병헌의 장난질이 어디까지 국민을 아니면 세상을 속일 수 있을지 감독의 뇌 속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천재 감독의 의도적 표현이 좀 더 비의도적으로 자연스럽게 인간들의 내면이 감동으로 와닿을 수 있는 작품으로 승화되어 가길 바라며 나는 다음 목요일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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