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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길 위의 추억

by 이문웅

윤기성과 정수는 캠핑카라는 작은 이동식 집을 중심으로 여행을 설계해 나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캠핑카는 단순히 이동수단이 아니었다.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자, 두 사람의 우정을 더 깊게 만들어 주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그들은 새로운 풍경과 마주하며 자신들의 인생에 새로운 색을 칠하고 있었다.

그날도 두 사람은 강원도의 한적한 산속 캠핑장에 도착했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캠핑장은 고요했다. 새들의 지저귐과 부드러운 바람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성은 캠핑카에서 내리며 두 팔을 활짝 벌려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와, 여기 공기 봐라. 이렇게 맑은 공기는 처음이야. 숲 냄새가 그냥 코끝을 찌르잖아.”

정수는 짐을 내리며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여긴 진짜 제대로 힐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너, 이곳에서 무슨 특별한 계획이라도 있는 거야?”

기성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글쎄, 그냥 걸으면서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계획이지. 어차피 우리가 요즘 계획을 세워서 움직이는 스타일은 아니잖아.”

정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아. 그게 요즘 우리 방식이지. 계획하지 않는 게 우리의 계획이다.”


그들은 캠핑카 옆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숲 속으로 산책을 나섰다. 숲 속은 고요하면서도 생명력이 넘쳤다. 발아래서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계곡물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끊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느꼈다.


걷다가 갑자기 기성이 멈춰 섰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정수야, 여기 봐봐. 이 나무들 정말 크다. 몇 년이나 된 거 같아? 백 년은 넘은 거 아니냐?”

정수는 나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자연은 우리보다 훨씬 오래 살아왔으니까. 그러니까 우리도 자연 앞에선 겸손해져야 한다고.”

기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무를 손으로 살짝 만져보았다.

“맞아. 이런 걸 보니까 내가 살면서 얼마나 조급하게 살았는지 다시 한번 느껴진다. 우리는 왜 그렇게 서두르며 살았을까?”

정수는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서두르는 게 우리 세대의 특징이었지. 항상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 근데 결국 중요한 건 이런 순간 아니겠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


그들은 한참을 걸은 후 캠핑카로 돌아왔다. 기성은 저녁 준비를 시작하며 말했다.

“오늘 저녁은 내가 책임진다. 너는 가만히 앉아서 쉬어.”

정수는 웃으며 소파에 앉아 캠핑카 창밖을 바라봤다.

“너 요리하는 거 언제 봐도 웃기다. 그래, 한 번 해봐. 네가 뭘 만들어도 난 먹어줄게.”

기성은 정수의 말을 무시하고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야, 말로만 하지 말고 진짜 맛있게 먹어야 한다. 내가 오늘 특별히 신경 쓸 거니까 기대해라.”


저녁 식사가 준비되자 두 사람은 캠핑카 안의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고소한 냄새가 캠핑카 안을 가득 채웠다. 기성은 자신 있게 접시를 내밀며 말했다.

“자, 이게 오늘의 메인 요리다. 어때? 비주얼 괜찮지?”

정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음… 생각보다 괜찮네. 너 진짜 요리 좀 늘었나 보다.”

기성은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요즘 유튜브에서 요리 영상 좀 봤지. 네 덕에 내가 점점 발전하고 있다니까.”

정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너 요즘 변한 거 나도 느껴진다. 옛날엔 네가 뭘 이렇게 자발적으로 하려고 하질 않았는데 말이야.”


그날 밤, 두 사람은 캠핑카 안에서 조용히 영화를 보기로 했다. 노트북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 두 사람은 웃음을 터뜨리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영화가 끝난 후, 기성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말했다.

“정수야, 우리 이런 여행을 더 자주 하자. 여기저기 다니면서 추억을 만드는 거지.”

정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지. 근데 너 이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거 보니까 내가 적응이 안 된다. 너 예전엔 진짜 수동적인 사람이었잖아.”

기성은 웃으며 말했다.

“사람은 변하는 거야. 나도 이제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 알게 됐어.”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은 캠핑카를 타고 새로운 여행지를 향해 떠났다. 가는 길에 정수가 말했다.

“야, 이번엔 바닷가 근처로 가보자. 바다를 보면서 차 한 잔 하는 것도 좋잖아.”

기성은 운전대를 잡으며 대답했다.

“좋아. 네가 추천하는 곳은 항상 옳으니까 믿고 간다.”


그들은 그렇게 매일 새로운 풍경과 마주하며 길 위의 추억을 쌓아갔다. 캠핑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그들의 대화는 깊어졌고, 서로에 대한 이해는 더 넓어졌다. 길 위의 시간은 단순히 이동이 아니라, 두 사람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특별한 순간들로 채워졌다.


그들의 여행은 끝없이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길 위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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