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벌 받는 중이다. 아주 호된 아버지 교육과 남편 교육 그리고 우리 남자들이 벗어날 수 없는 가장의 교육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다. 난 지금 버림받은 남자다.
아이들이 달팽이처럼 느리고 순수하다는 것을 나는 왜 몰랐을까? 결혼한 남자가 노동자로서 돈을 벌지 않으면 가정이 힘들고 아이들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왜 처절하게 느끼지 못했을까? 오늘도 나는 나를 비난하고 질책한다.
어느 날 내 운명에 검은 커튼이 드리운 채 밝은 햇빛은 들어오질 않았다. 게다가 나는 어두운 반지하 단칸방에서 처음 몇 년을 보내고 나머지 몇 년은 지상으로 나와 살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엔 큰 빚의 어둠으로 허덕이고 있다.
그런데 나는 행복한 아침을 찾아가는 항해사다. 망망대해에서 나침반마저 고장 나고 연료마저 떨어졌었지만 어느 날 찾아온 작은 새 한 마리가 육지가 멀지 않았다는 희망을 주었고 나는 지금 바람에 배를 맡기고 육지를 향해 가고 있다. 다행히 항해도중에 큰 유전을 발견하며 육지에 도착하는 대로 돈의 위력을 가족들에게 보낼 예정이다.
그런데 육지로 다가가면 갈수록 땅을 딛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기보다는 어떻게 내가 사랑했는지 나의 사랑이 어땠는지 설명하라고 말하는 나에게 나는 다시 차갑고 퍼런 칼날로 마음을 자른다. 시뻘건 피가 되어 가슴이 뜨겁고 아프다. 그리고 하늘을 보고 목놓아 울고 싶어 진다. 그래도 이성은 나에게 차가운 시선으로 아직 나를 안아주지 않으며 봄날을 외면하게 만든다.
지난겨울은 나의 거의 마지막 겨울을 보냈다. 이제 배에서 내릴 날로 손을 꼽으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번 9일에는 저 멀리 창원까지 가기로 했다. 그동안 무슨 이유였는지 나의 가장 큰 달란트를 외면하고 살면서 웃음을 잃어버렸던 내게 흔쾌히 "그래! 너 한 번 해봐" 그렇게 문을 열어주곤 2025년의 봄을 향해 간다.
이제 나를 찾은 길고 긴 여행에서 바다의 항해를 끝내고 육지로 들어서는 이 시점에 나에게 보내는 인색하지만 포근하게 보내는 스스로의 인사가 요즘의 나를 행복하게 한다. 이제 펼쳐질 나의 육지 여행은 조금 느리고 내 시간으로 그리고 나의 품을 한껏 내어주는 여행을 하며 그녀의 은근한 다가옴을 기다려보리라.
경상도 사나이도 아닌데 경상도에서 자란 덕에 경상도 지기가 몸에 배어 나는 내 여자에게만 무뚝뚝하고 표현을 못하는 사장 장애 남이다. 그런 내가 긴 바다 항해를 끝내고 길고 긴 숲으로 들어가는 순간은 이미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여 아내의 한 마디에 고개 숙이고 입은 닫은 채 몸으로 표현하는 훌륭한 머슴 근성으로 살아가는 하루를 꿈꾼다.
천성이란 못된 습성으로 나를 변호하던 일들은 이미 바다 짠물에 다 녹아버리고 지금의 나는 새로운 생명체.
그런 내가 오늘도 나를 채근하며 육지의 날을 꿈꾼다.
사랑에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아 숲을 헤매듯 푸른 숲에서 너를 찾는 그날까지 행복하게 걸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