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제 개헌 시도의 본질은 권력 독점이다.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와 맞물린 내각제 개헌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를 단순한 제도 개편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원칙—국민이 직접 권력을 선택한다는 대전제를 놓치게 된다.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내각제로 전환하자는 시도는, 실상은 정당 권력의 독점을 위한 정교한 전략이자,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기득권의 야욕이다.
대통령제는 국민이 직접 최고 권력자를 선출함으로써 권력의 정통성과 책임성을 보장하는 구조다. 5년마다 대통령 선거를 통해 국민은 정권을 심판하고 교체하며, 정치의 중심축을 다시 바로세운다. 이는 단지 한 사람을 뽑는 절차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국민의 통제 수단이자, 민주공화국의 근간이다. 반면 내각제는 정당 내 파벌 정치에 의해 총리가 결정된다. 국회의원들이 정당 지도부의 눈치를 보며 줄을 서고, 국민은 단지 정당에 투표했을 뿐인데, 그 뒤로 권력 구조는 국민의 통제를 벗어난 채 정당 권력 안에서만 재편된다. 이는 국민이 빠진 민주주의, 즉 기득권 엘리트들에 의한 정치로의 회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개헌 시도가 ‘정치개혁’이라는 외피를 쓰고 진행된다는 점이다. 대통령제를 ‘제왕적’이라 비난하며 폐해를 과장하는 동시에, 내각제를 ‘합의와 견제의 정치’로 미화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은 아직도 지역주의, 계파주의, 공천권 독점, 이익집단 결탁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 내각제가 도입되면, 국회는 국민의 대의기관이 아니라 정당 지도부의 의회로 전락하고, 정당은 민주주의의 통로가 아니라 권력의 담장이 된다. 국민은 5년마다 권력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잃게 되며, 정치는 폐쇄된 엘리트 집단의 유희가 된다.
지금 제기되는 시나리오는 더욱 교묘하다.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만든 뒤, 임기 중에 내각제로 개헌하여 본인은 당 대표나 국회의원 자격으로 다시 총리 자리에 오르겠다는 그림이다. 국민은 대통령을 뽑았다고 믿었지만, 곧 총리 중심 체제로 권력이 이동하고, 당 대표 중심의 내각 통치가 시작된다. 이재명은 형식적으로는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실질적으로는 총리이자 당 대표로 권력을 계속 유지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명백한 권력 설계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우롱이다. 정권을 ‘잠시 빌렸다가’ 다시 자신들의 본거지인 국회로 권력을 회수하고, 그 뒤로는 국민이 그 어떤 방식으로도 권력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역사적 경험도 경고하고 있다. 제2공화국 시절 장면 정부는 내각제 구조 아래에서 국정의 무기력함과 혼란을 보여주었고, 이는 곧 군사 쿠데타의 빌미가 되었다. 내각제는 책임의 분산 구조로 인해 명확한 정치적 리더십이 작동하지 않으며, 국민은 정책 실패에 대해 누구도 확실하게 책임을 묻지 못하게 된다. 실패해도 누구 하나 물러나지 않는 무책임 정치, 이것이 내각제의 실체다.
지금 대한민국은 안보, 경제, 인구, 기술의 복합위기 속에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결단력 있는 단일 책임 구조가 필요하다. 누가 나라를 책임지고, 누가 실패의 책임을 질 것인가를 분명히 하는 것이 강한 국가의 조건이다. 대통령제는 바로 그 책임구조의 핵심이다. 필요하다면 제도를 보완하고, 사법부와 입법부의 견제 기능을 강화하며 권한을 조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권력 구조를 송두리째 갈아엎어 정당 권력 중심으로 재편해야 할 명분이 될 수는 없다.
헌법은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뜯어고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헌법은 국민의 권리를 지키고, 권력이 국민 위에 서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마지막 울타리다. 개헌은 권력자의 욕망이 아니라 국민의 필요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지금 시도되는 개헌 논의는 그 출발점부터 의심스럽고, 그 최종 목표는 명백히 위험하다.
우리는 이제 물어야 한다. 이 개헌 시도가 과연 민주주의의 확대인가, 아니면 민주주의를 해체하려는 새로운 방식의 독재인가.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내각제를 도입하겠다는 발상은 국민의 직접 권한을 폐기하겠다는 뜻이며, 이는 곧 국민 없는 국가, 국민 없는 정치로의 귀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통령제를 지켜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제도 유지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증명하는 최소한의 방어선이다. 권력을 국민이 갖고 있다는 당연한 원칙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내각제 개헌 음모를 반드시 분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