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있었다. 약혼녀를 잃었다. 너무나도 잔혹하고 비열한 방식으로. 그는 믿었다. 국정원 요원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국가의 법과 정의가 그 잔혹함을 심판해줄 것이라. 하지만 믿음은 배신당했다. 범인은 살아 있었다. 살아서 웃고, 살아서 당당하며, 살아서 "나는 죄 없다"고 외쳤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는 그렇게 시작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지 한 편의 복수극이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지금 우리의 이야기다. 대한민국 2025년, 대선을 앞두고 우리는 다시금 한 악마를 마주하고 있다.
그는 어느 대통령 후보다. 사람들은 그를 ‘흙수저 영웅’이라 추켜세우기도 하고, '검찰의 희생양'이라 동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를 따라가면, 민낯은 다르다. 백현동, 대장동, 쌍방울, 성남FC,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 수많은 의문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말뿐인 개혁, 비전 없는 민생, 그리고 수많은 거짓말. 무엇보다도 섬뜩한 것은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죽음들이다. 수많은 인물들이 수사를 앞두고 세상을 등졌고, 그는 침묵하거나, 조문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정치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공포를 뿌리고 있다는 사실이 이 사회를 병들게 한다.
영화 속 김수현처럼, 국민은 처음엔 법을 믿었다. 검찰이, 경찰이, 언론이, 그리고 사법부가 진실을 밝히리라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법은 무력했고, 언론은 침묵했고, 정치는 타협했고, 사법은 유보했다. 그 결과, 국민은 스스로를 정의의 주체로 세워야 했다. 댓글을 쓰고, 영상을 퍼나르고, SNS를 통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워야 했다. 영화 속 수현이 범인을 추적하며 '직접 응징'의 길을 택했듯, 국민 역시 자발적 정의의 여정에 들어선 것이다.
이 대통령 후보는 정치 기술자다. 언변은 능란하고, 감정 연출은 탁월하며, 자신을 피해자 프레임에 가두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보복심과 권력욕이 번뜩인다. 그가 말하는 개혁은 숙청의 코드로 해석되고, 민생은 오직 자신의 방탄용 구호일 뿐이다. 악마는 뿔과 꼬리를 숨기고 다가온다. 가장 그럴듯한 인간의 탈을 쓰고, 대중을 매혹시키며, 자신이 악마가 아님을 끊임없이 설득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이 ‘어느 후보’가 가진 위험성이다.
그는 이미 체제를 시험하고 있다. 사법부의 판단을 공개적으로 무시하고, 언론을 향해 고소와 협박을 일삼으며, 정치적 반대자들에게 “가만두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것은 단지 정권의 교체가 아니라, 공화국의 해체다. 그는 그 누구보다 '복수심'에 불타는 지도자다. 문재인 정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지명에 분노했고, 자신을 수사한 검사들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며, 자신의 측근을 건드린 언론에는 벌을 내리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인물이 ‘민생’을 외친다고 해서 그 말을 믿어야 하는가?
영화에서 수현은 마지막에 결국 복수를 완성한다. 그러나 그의 얼굴엔 어떤 승리감도 없다. 오히려 공허함과 눈물이 흘러내린다. 법이 무너진 세상에서, 개인의 복수는 또 다른 파괴일 뿐임을 그는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도 비슷한 선택 앞에 서 있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우리는 다시 정의를 세워야 한다. 복수 아닌 공정으로, 보복 아닌 통합으로. 그러나 그 첫걸음은, 악마를 알아보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시험대 위에 올라와 있다. 민주주의란 단지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다. 권력과 언변이 아닌, 품격과 책임의 정치를 다시 세우는 일이 지금 절실하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가장 무서운 악마는, 대중이 그의 악마성을 인지하지 못할 때 탄생한다는 것을. 지금, 우리는 악마를 보았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