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점점 각박해진다지만, 때때로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최근 다시 회자된 고(故) 장기표 선생과 김문수 후보의 후일담이 그렇다. 정치라는 냉혹한 세계 속에서도 인간적인 우정과 존경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이 이야기는, 두 사람의 삶의 궤적만큼이나 깊은 울림을 준다.
장기표 선생은 한국 민주화 운동사의 굵직한 이름이다. 1970년대 유신정권 하에서 반독재 투쟁의 최전선에 있었던 그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가교 역할을 하며 시대의 양심으로 살아왔다. 그는 서울대 재학 중 유신체제에 항거하며 수차례 구속되었고, 1980년대에는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에서 활동하며 김영삼, 김대중 등과 함께 한국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특히 '민중후보론'을 내세워 민중의 직접 정치참여를 주장했던 장 선생의 정치철학은 이후 진보정치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위대한 업적을 세운 그도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지며 생활고를 겪었다. 그 시절, 조용히 그를 도왔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문수 후보였다. 최근 한 증언에 따르면, 김 후보는 장기표 선생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꾸준히 매달 100만 원씩 생활비를 건넸다고 한다. 그것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아무런 대가 없이.
두 사람은 1970~80년대 민주화 투쟁의 동지였다. 같은 길을 걸었고, 때로는 각자의 노선 차이로 멀어지기도 했지만, 서로에 대한 존경과 신뢰는 변하지 않았다. 김 후보는 장 선생을 "민주화 운동의 큰 어른"이라 표현했고, 장 선생 역시 생전에 김 후보를 향해 "진심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정치적 입장이나 노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 그 자체였다.
이후 장기표 선생은 2022년 대선에서도 자신의 노선을 지키며 소신 있는 행보를 이어갔다. 비록 언론의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의 말 한 마디, 성명 하나하나는 여전히 무게가 있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이 믿는 ‘정치의 품격’을 지켰다.
그리고 이제, 그런 장 선생의 삶을 회고하며 전해지는 이 작고 조용한 미담 하나는 우리에게 묻는다. 정치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권력을 잡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동지를 지켜주는 일. 말이 아닌 손을 내미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 사람을 잊지 않는 일.
세상은 냉정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살아있는 한, 우리는 아직 인간적인 정치를 꿈꿀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고 장기표 선생이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