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웠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위에서, 이정표조차 사라진 인생이라는 사막을 걷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앞을 향해 나아가도, 발 아래엔 늘 불확실함이 있었고, 뒤돌아본 자리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를 잃어버린 시간은 조용하고 교묘하게 나를 좀먹었다. 친구를 잃고, 믿음을 접고, 내 안에 있던 목소리마저 침묵시켜버렸다. 마치 지우개로 지운 듯, 내 주장은 하나둘씩 사라졌다. 나의 온기는 점점 옅어졌고, 내가 나에게조차 낯설어지던 그 시절. 그렇게 나는, 어딘가에 남겨야만 했다. 아무도 듣지 않아도 괜찮으니, 무언가를 남겨야 했기에, 브런치를 두드렸다.
하지만 그 첫 시도는 낯설고 불편했다. 내 고백은 마치 번지르르한 문장들 틈에 끼어 허우적거리는 듯했고, 나는 그 속에서 사치를 즐기는 이기적인 생명체들의 ‘불편한 겸손’에 혼란을 느꼈다. 그들은 따뜻한 척했지만, 나는 차가웠다. 그들의 공감은 인스타그램 필터처럼 가벼웠고, 나는 그 위선에 질투했다. 그러나 세 번째 글을 쓸 때 즈음, 나는 나 자신과, 그리고 이 공간의 정서와 조심스럽게 합의했다. 나는 브런치를 감상의 무대가 아니라, 외로움을 통과시키는 하나의 관으로 삼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비로소 나의 외로움을 토로하는 창구를 마련하게 되었다.
두 번씩이나 작가 승인이 나지 않았을 때, 나는 무척 당황했고, 화가 났다. 마치 존재를 부정당한 듯한 기분이었다. 나의 문장이, 나의 진심이 누군가의 기준 아래에서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 그것은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내 존재에 대한 일종의 거부처럼 느껴졌다. 나는 브런치가 나를 가려낸다고 느꼈고, 그 기준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졌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어떤 승인보다도, 나를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 있는 배설장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쓰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내기 위해 쓰는 사람이었다. 인정받기 위해 쓴 글이 아니었기에, 나는 다시 브런치에 나를 배설했다. 어쩌면 그것은 포기나 집착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한 멈출 수 없는 내 안의 증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말한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공감을 얻기 위해 치장하거나 포장하지도 않는다. 나는 단지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안의 어둠이 이토록 선명하고 생생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가닿지 않아도 괜찮았다. 들리지 않아도, 전달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누군가는 이것을 ‘감정팔이’라고 비웃겠지만, 내게는 이 기록조차 삶을 버텨내는 행위였고, 치유였다. 외로움은 단순한 고립이 아니라, 수많은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쌓여 무덤이 되어버린 감정의 형태였으니까.
브런치는 내게 스크린 위의 고백장이었다. 아무도 듣지 않던 이야기를, 아무도 묻지 않았던 기억을, 나는 이제 화면 위에 남길 수 있었다. 내 손끝은 타인을 향한 외침이 아니라, 내 안에 갇힌 나를 부르는 구조 요청이었다. 피드백은 중요하지 않았다. 좋아요, 공감, 조회수, 구독자 수. 그 어떤 숫자도 내 상처에 약이 되지 않았고, 나는 처음부터 숫자를 바라지 않았다. 오직 나 자신을 위해 썼다. 살아 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매일같이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다시 회수하고, 그러다 또다시 길을 잃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그 흔적 하나만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내 안의 소멸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이었다.
때때로 나는 이 글들이 나에게조차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너무 오래 눌러 담은 감정은 쉽게 말로 옮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단어가 되길 거부했고, 문장이 되길 두려워했다. 그래서 나는 그저 적었다. 흐린 구름 아래에 앉아, 오늘도 살아남은 나의 파편들을. 오늘도 조용히 부서져 가는 내 마음의 틈을. 이름 없는 고백들이었고, 제목조차 어울리지 않는 낙서였지만, 나에겐 그것이면 충분했다. 문장이라는 형식을 빌려, 나는 나를 견디고 있었다.
브런치는 더 이상 누군가와 경쟁하는 무대가 아니었다. 나는 그곳이 상을 받기 위한 창작의 전시장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오히려 소속될 수 없는 이들, 어디에도 닿을 수 없는 목소리들이 모여 있는 이름 없는 일기장이 되길 바랐다. 그렇게 나는 점점 세상의 일부가 아니라, 내 이야기의 전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남들이 정한 중심에서 멀어졌지만, 나는 내 안의 진심에 더 가까워졌다. 그게 나에게는 더 값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