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변화는 오고 있고, 문제는 신뢰다

by 이문웅

2025년의 한국은 눈에 띄는 외형보다, 보이지 않는 내부에서 더 격렬한 변화를 겪고 있다. 삶의 방식, 소비의 구조, 정체성에 대한 태도까지 모두 재편되고 있으며, 이는 단지 경제의 흐름이 아니라 개인의 존재 방식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초저출산과 고령화는 추상적 수치가 아니라 일상 속의 변화다. 1인 가구는 표준이 되었고, 10대들은 디지털 기반의 소비 결정권자로 성장해 가정의 소비를 주도한다. 시장은 더 이상 세대 중심이 아니라, 정체성과 취향 중심으로 분화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소비뿐 아니라 정치, 문화, 노동의 영역까지 전방위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Ipsos의 『Flair South Korea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한국 소비자의 핵심 키워드는 ‘변화’와 ‘탐험’이다. 젊은 세대는 MBTI, 유전자 검사, 퍼스널 컬러 분석 등을 통해 자신을 끊임없이 해석하며, ‘무엇을 갖는가’보다 ‘나는 누구인가’를 증명하는 방식으로 소비를 정의한다. 제품은 기능보다 해석을 요구받고, 브랜드는 품질이 아니라 정체성과 관계를 제안해야 한다. 이처럼 정체성을 중심에 둔 소비행위는 기업에게 더 높은 윤리성과 진정성을 요구하게 된다.


한편 구독 경제는 소유 중심의 소비를 경험 중심으로 전환시켰다. 스트리밍, 자동차, 가전, 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필요할 때’ 접근하고 ‘원할 때’ 해지하는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소비자는 더 이상 사물에 묶이지 않고, 유연한 삶의 리듬을 구축하는 데 집중한다. 브랜드는 판매자가 아니라 삶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개인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는 브랜드가 더 큰 신뢰를 얻게 된다. 결국 소비자는 단지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과 리듬에 맞는 ‘살아가는 방식을’ 구매하고 있는 것이다.


ESG 역시 형식적인 선언을 넘어서 진정성 있는 실천을 요구받고 있다. 한국 소비자들은 기업의 환경 감수성과 사회적 책임을 날카롭게 주시한다. 이제는 ‘착한 소비’가 감성이 아닌 이성의 영역이 되었고, 윤리 경영은 생존의 문제로 부상했다. 무관심한 브랜드는 신뢰를 잃고, 행동하는 기업만이 선택받는다. 이는 더 이상 트렌드가 아니라 기본 조건이 되었다.


K-푸드는 이제 음식 이상의 콘텐츠가 되었다. 발효, 건강, 이야기, 감성—all-in-one이다. 김치, 도시락, 전통식은 단순한 수출품이 아니라 K-정체성의 대표이자 글로벌 스토리의 일부다. 이러한 트렌드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인공지능이다. AI는 과거의 단순 분석을 넘어서, 소비자의 감정과 맥락, 변덕스러운 선택의 흐름까지 읽어내는 통찰 도구로 기능한다. 마케팅은 예측이 아닌 공감의 기술이 되고 있다.


이렇듯 한국은 거대한 전환의 시대에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 대선이 치러지고 있다. 국민은 정권 교체보다 더 근본적인 갈증을 느낀다. 바로 신뢰 가능한 질서의 회복이다. 그러나 지금 유력 후보가 보여주는 신뢰 기반의 취약성, 과거 의혹, 통합력 부재 등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불안을 안기고 있다. 당선 이후 ‘변화’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권력이 과연 안정된 시스템을 복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새로운 혼란을 유발할까?

결국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누가 되느냐가 아니라, 그 선택이 이 사회의 기반을 어떻게 흔들고 재편할 것인가. 소비든 정치든, 지금 우리는 선택의 한복판에 서 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그 변화가 어디로 향할지는 이제 우리의 손끝에 달려 있다.


그런데 이 변화의 흐름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건 국내외 복합적 정치 상황과 돌발 변수들이다. 전직 대통령의 계엄령 추진이 좌절된 이후, 정치권은 장기적인 혼란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갈수록 격화되는 정파 간 대립, 정책 공백, 책임 회피성 공방이 이어지면서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한 정치적 피로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은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에 대한 우려와 맞물리며 경제 심리 전반을 위축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히 대규모 산불, 일부 건설 현장의 공사 중단, 그리고 국내 최대 통신사를 겨냥한 대규모 해킹 사건까지 겹치며 경제에는 연이어 악재가 터졌다. 해킹으로 인해 수백만 가입자의 민감한 정보가 유출되면서 디지털 신뢰 기반마저 흔들렸고, 이는 소비 심리뿐 아니라 기술 산업 전반에 대한 투자 위축으로까지 이어졌다.


실제 경제 지표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성장률은 주춤했고, 물가도 둔화되며 디플레이션 조짐까지 감지된다. 제조업은 비IT 분야를 중심으로 급격한 침체에 빠졌으며, 전통 제조 강국이었던 한국의 산업 구조가 흔들리는 조짐이 나타났다. 건설업의 경우, 대형 프로젝트 지연과 민간 개발 위축으로 인해 더욱 뚜렷한 타격을 입었고, 이는 고용 증가율 둔화로 이어지며 노동 시장 전반에 불안을 불러왔다. 청년층과 중장년층 모두에서 취업 기회 부족에 대한 체감이 높아지고 있고, 자영업자와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불만과 피로가 확산되고 있다.


정치 일정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4월 4일로 예정된 대통령 탄핵 심판은 정치적 격돌의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으며, 이어지는 6월 3일 제21대 대선은 그야말로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치열하고 양극화된 선거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각 진영은 서로를 부정하고 있고, 유권자들은 점점 냉소와 무기력 사이를 오간다.


이러한 복합적인 내부 위기 상황은 결국 세계적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글로벌 여론조사기관 Ipsos의 ‘What Worries the World’ 항목에서도 한국은 처음으로 정치적 불안정, 경제 불확실성, 기술 신뢰 붕괴 항목에서 모두 상위권에 동시에 등장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나라’에서 ‘불확실성이 큰 나라’로 이미지가 뒤바뀐 것이다.


즉, 지금 이 순간 한국이 직면한 변화는 단순히 문화적, 기술적, 소비적 전환만이 아니다. 정치적 신뢰의 붕괴, 경제 시스템의 피로, 그리고 사회 구조의 분열이 동시에 진행되는 중첩된 변화다. 이 거대한 파도를 넘어설 리더십은 과연 준비되어 있는가. 우리는 지금 그 물음 앞에 서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버틴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