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침묵은 곧 방조다 – 여성단체는 왜 말하지 않는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 아들 논란과 선택적 정의에 대하여

by 이문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아들이 과거 온라인 커뮤니티에 남긴 글들은 단순한 ‘장난’이나 ‘청년기의 일탈’로 보기에는 수위가 지나치게 높았다.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성적 표현과 혐오, 그리고 도박 정황까지 담긴 그 글은 많은 시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사안에 대해 가장 먼저 반응해야 할 여성단체들 중 그를 지지하는 여성 단체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어떤 사과 요구도, 공식적 논평도, 성명도 없었다.


진보적 여성단체의 침묵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내부 송추행 사건이 있을 때도 그들은 침묵했다. 1990년대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대통령이던 빌 클린턴은 백악관 인턴이던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탄핵 위기에 몰렸다. 이 스캔들에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정작 여성운동 진영이 그를 방어하고 나섰다는 사실이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클린턴이 공화당보다 여성정책에 더 진보적이라는 이유로, 그의 사생활을 ‘정치적 음모’로 치부하며 피해자인 르윈스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마저 보였다.
결과적으로 미국 여성운동은 진영의 논리에 굴복했고, 여성의 존엄보다 정치적 유불리를 우선시한 선택으로 인해 대중적 신뢰를 잃었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침묵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단체들은 정의와 인권을 외치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진보 진영의 대표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자녀가 관련된 부적절한 사안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이중잣대이며, 정의가 정치 앞에서 무너지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운동은 권력을 향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여성단체 일부는 권력에 복무하고 있다. 진보 정치세력과의 오래된 연대는 이제 윤리적 판단을 흐리게 하고, 침묵의 정당화를 낳고 있다. 만약 이 문제가 보수 정치인의 자녀에게 발생했다면 지금과 같은 침묵은 없었을 것이다. 진보 정치인의 자녀이기 때문에, 도덕적 문제도 ‘조용히 넘어가야 할 것’이 된 셈이다. 이러한 침묵은 실로 위험하다. 이는 권력을 향한 감시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방어이며, 운동의 이름으로 정의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 역시 이 문제를 ‘개인의 일탈’로 축소하고, 진지한 사과나 책임 있는 언급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성적인 비하와 도박 문제는 윤리와 공공의 가치의 영역이며, 단지 사적인 가정문제로만 치부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러한 무책임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운동의 본령이자 시민의 권리이기도 하다.


침묵은 메시지다. 그 메시지는 "이 사안은 별문제가 없다", "비판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선언에 다름 아니다. 침묵하는 여성단체는 더 이상 정의의 편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편향에 물든 단체이며, 자기 기만을 통해 자신이 말하던 가치를 무너뜨리고 있는 중이다.


정의는 진영에 따라 달라질 수 없다. 여성의 권리는 모든 권력에 대해 동일한 기준을 요구해야 한다. 빌 클린턴의 스캔들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지금 한국의 여성단체들도 침묵이 아니라 양심으로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운동은 운동이 아니라 정치의 하청일 뿐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침묵을 걷고 정의를 말하라. 그 단호함이야말로, 운동이 다시 시민에게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변화는 오고 있고, 문제는 신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