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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진짜 선거다

프랑스에서 배우는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잃어버린 투표의 품격

by 이문웅

민주주의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가 존중받는 제도다. 그리고 그 의지는 ‘표’라는 형태로 표현된다. 그래서 선거는 단순히 권력을 선출하는 제도가 아니라, 국민이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의식이며, 정치 공동체의 신뢰를 재확인하는 장치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선거는 과연 그 기대를 충족시키고 있는가. 빠르고 효율적인 개표 시스템을 갖추었다고는 하지만,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조작 의혹, 전자개표 불신, 후보자보다 정당 기호가 더 기억되는 기형적 투표문화 속에서 우리는 점점 민주주의의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럴 때일수록 프랑스의 선거제도를 들여다보게 된다. 프랑스는 정치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민주주의의 원형을 지켜가려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그들의 대통령 선거제도는 단순히 시스템의 차이를 넘어서, 한 표의 가치를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이 녹아 있는 구조다.


프랑스가 채택한 결선투표제는 유권자의 소신과 전략을 모두 존중하는 제도다. 1차 투표에서는 마음속 신념에 가장 가까운 후보에게 기꺼이 투표할 수 있고,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두 후보가 결선에서 다시 한 번 국민의 선택을 받는다. 이렇게 유권자는 1차에서는 '마음'으로, 2차에서는 '이성'으로 투표할 기회를 가진다. 전략적 선택만을 강요받는 한국의 단일투표제와는 다르게, 표를 두 번 행사할 수 있다는 구조는 소신 있는 시민이 책임 있는 선택도 할 수 있게 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프랑스의 기호번호 없는 투표 방식이다. 프랑스에는 ‘1번’, ‘2번’ 같은 정당 기호가 없다. 유권자는 후보자들의 이름이 적힌 여러 종이 중 원하는 후보의 이름이 적힌 것을 골라, 봉투에 넣어 투표함에 넣는다. 이름을 고르는 행위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얼굴과 정책을 떠올리고, 기억하며, 평가하는 행위다. 정당 중심, 기호 중심, 당색 중심의 한국식 투표와는 전혀 다른 발상이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사람보다 ‘몇 번’을 먼저 기억하게 되었고, 이름보다 정당 브랜드가 투표를 대신하게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인 차이는 개표 절차의 투명성이다. 프랑스에서는 투표함이 절대로 이동하지 않는다. 투표는 한 장소에서 이뤄지고, 그 투표함은 그 자리에서 개표가 진행된다. 개표는 사람이 한 장 한 장 직접 봉투를 열고 투표지를 꺼내어 읽는 방식이다. 전자개표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절차는 유권자의 눈앞에서, 정당 참관인, 판사, 지역 시민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철저히 공개적으로 진행된다. 단 한 표도 사람의 눈과 손을 벗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전자개표기와 QR코드, 알고리즘 분석이 선거의 핵심 도구로 활용되며, 사전투표와 본투표 간 결과 차이, 투표함 이동, 전산 시스템 문제로 인한 의혹들이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기술적으로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민주주의는 효율보다 신뢰가 우선이다. 국민의 눈에서 멀어진 개표는 국민의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프랑스는 단지 시스템이 정교해서가 아니라, 한 표의 절차와 가치가 존엄하게 다뤄지는 문화와 철학을 갖고 있기에 진짜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품격을 지닌다. 결선투표제는 시민의 신념을 존중하고, 이름 중심의 투표는 사람을 기억하게 하며, 이동 없는 개표는 의혹 없는 신뢰를 쌓는다.


이제 우리는 묻고 싶다.

무엇이 진짜 민주주의이고, 어디가 진짜 민주주의 국가인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생각하게 된다.


민주주의란 단지 투표율이 높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 한 표가 시작되어 개표까지 이어지는 모든 과정이 정직하고 투명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그 표를 행사하는 사람의 존엄과 권리가 시스템 안에서 자연스럽게 보호받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다.


프랑스는 보여준다.

한 사람의 소신이 사표가 되지 않도록 결선투표제를 마련했고,

정당 기호가 아닌 후보자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판단을 유도하며,

투표함은 유권자의 손에서 떨어진 후에도 그 자리에서 개표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지켜낸다.


그들은 보여준다.

그들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당당함을,

문명적 우위가 있는 나라라는 자부심을.


반면 우리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QR코드와 전자개표, 투표함의 이동과 불투명한 통계 해석 사이에서,

우리는 조용히 묻는다.

무엇이 진짜 민주주의이고, 어디가 진짜 민주주의 국가인가.

이제는 그 질문을 피해갈 수 없다.


며칠 후면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가 끝난다.

그러나 선거는 끝나도 민주주의는 계속되어야 한다.

정권은 바뀌어도, 국민의 주권은 바뀌지 않으며,

민주주의의 진정한 시험대는 투표 이후에도 국민이 결과를 믿고 존중하는가에 달려 있다.


거짓과 조작으로 점철된 선거가 아닌,

모두가 결과를 받아들이고 수긍할 수 있는 선거제도야말로

영원한 민주주의의 꽃이다.


이것이 진짜 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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