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청포도 사탕

by 이문웅

어제 저녁, 참 25년 한 해를 살아내는 게 유난히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무엇이 그렇게 버거웠는지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한 해의 끝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마음이 쉽게 무너졌다. 별일 없는 하루들이 쌓여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무거웠다. 아무도 묻지 않는 고단함을 혼자 정리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현관에 쌓여 있던 재활용 쓰레기를 들었다. 박스와 캔, 비닐들이 서로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괜히 크게 들려 잠시 멈춰 서기도 했다. 밤공기는 차가웠고,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 시간에 걷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쩐지 내가 세상에서 조금 비켜 서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쓰레기를 버리고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연말 장식은 이미 정리되어 있었고, 계산대 옆에는 새해 행사 문구만 남아 있었다. 바구니를 들고 진열장 앞에 서서 오래간만에 과자를 이것저것 담았다. 특별히 먹고 싶다기보다는, 예전의 나를 잠깐 흉내 내보고 싶은 마음에 가까웠다. 계산을 마치고 돌아와 오피스텔 문을 닫고 나서야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봉투를 열어 과자를 뜯어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씹었다. 마지막 날이 그렇게 씹히는 것 같았다. 바삭한 소리와 함께, 잘 버텼다는 말도 못 들은 한 해가 조용히 부서졌다. TV를 켜지도 않고 불만 켠 채로 그대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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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打誤 저서 : 동아시아오딧세이, 행복의 공식, 대한민국 건국영웅들, 네오젠, 네오젠시티, 네오갱, 사미예찬, 트레 뻬르소네, 라이프캡슐 예명 : 이타오 AI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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