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금 항로를 잘 유지하고 있는가?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의 멸망과 새로운 국가를 염원한 수많은 건국 영웅들의 노력으로 탄생했다. 이 문장은 단순히 한 국가의 기원을 설명하는 서술이 아니다. 그것은 주권을 상실한 이후에도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집단적 의지를 압축한 선언에 가깝다. 국권이 사라진 땅에서 국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었다. 국가란 제도가 아니라 관계의 총합이며, 그 관계는 시간과 선택의 축적 위에서만 형성된다. 이름 없이 기록되지 않은 민중의 고통, 망명지에서 이어진 외로운 사유와 투쟁, 서로 충돌하는 사상과 노선, 그리고 반복되는 타협과 좌절이 겹겹이 쌓이며 대한민국이라는 불완전하지만 살아 있는 체제가 형성되었다. 이 출발은 영광의 순간이 아니라, 불가피한 선택들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이 출발점을 종종 ‘피해의 역사’로만 정리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식민지는 분명 우리에게 침략이었고, 주권의 강탈이었으며, 인간의 존엄이 체계적으로 훼손된 시간이었다. 이 사실은 결코 희석되거나 미화될 수 없다. 피해를 피해라 부르지 못하는 순간, 역사는 왜곡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 비극이 어떤 세계사적 조건 속에서 발생했는지를 함께 바라보는 시선 역시 필요하다. 제국주의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국제 질서가 어떤 방식으로 힘의 불균형을 제도화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왜 어떤 사회는 대응할 수 있었고 어떤 사회는 내부에서 붕괴되었는지를 묻지 않는다면, 우리는 피해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극복의 조건을 이해할 수는 없다.
왜 어떤 문명은 침략자가 되었고, 왜 어떤 사회는 저항조차 조직하지 못한 채 식민지화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은 불편하지만 회피할 수 없다. 뒤처진 문명이 식민지화되어 갔다는 냉혹한 문명사적 시각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은 자학이 아니라 반성이고, 책임 있는 성찰이다. 이 성찰은 과거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선택지를 넓히기 위한 작업이다. 이 과정을 생략할 때 우리는 과거를 애도하는 데서 멈추고, 분노를 반복 생산하는 언어만을 상속받게 된다. 반대로 이 성찰을 통과할 때에만, 국가는 다시 같은 조건에 놓였을 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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