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항해를 이해하기 위해 조선을 단순히 “망해가던 왕조”로 요약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태만에 가깝다. 조선은 하루아침에 무너진 나라가 아니었고,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사회도 아니었다. 문제는 조선이 변화의 필요성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점이 아니라, 이미 변화가 불가피해진 시점에서도 국가가 그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 물리적·제도적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는 데 있었다. 조기 개혁의 시도라는 표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실제로는 늦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근대 공화국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이른 시도였기 때문이다.
조선의 국가 기능 붕괴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임진왜란은 조선이 무너진 원인이기보다, 그 취약성이 외부 충격에 의해 한꺼번에 드러난 사건이었다. 전쟁 당시 조선의 정규군 규모는 일본이나 명나라와 비교할 때 현저히 적었다. 일본은 이미 전국시대를 거치며 대규모 상비군 운용과 조총 중심의 전술을 체계화하고 있었고, 명나라는 막대한 인구와 재정을 바탕으로 대규모 원정군을 파병할 수 있었다. 반면 조선은 중앙군과 지방군 모두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상태였다. 병적은 있었으나 실병이 없었고, 군역은 면제되거나 대납되었으며, 무기는 노후화되어 있었다.
이 격차는 단순한 군사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가 군대를 유지할 재정 능력을 상실했음을 의미했다. 조선은 왕권이 군사력을 장악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불안을 두려워했고, 동시에 그 두려움을 감당할 만큼의 재정 기반도 갖추지 못했다. 상비군을 유지할 세금 체계도, 군수 산업도, 지속적 훈련 체계도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가 스스로를 방어할 최소 조건을 이미 잃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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