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정의 이상과 건국의 열망이 존재했다고 해서, 국가가 자동으로 수립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란 선언이나 의지만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국제질서, 군사력, 행정 능력, 재정, 그리고 무엇보다 권력을 실제로 장악할 수 있는 현실적 조건 위에서만 성립한다.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이 복잡하고 논쟁적인 이유는, 바로 이 ‘현실의 조건’이 극도로 불완전한 상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 35년은 단순한 억압의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선 말기부터 싹트기 시작한 자치 경험과 정치 실험, 공화정으로 향하던 내부의 발전 경로가 완전히 단절된 시간이었다. 행정은 일본 제국의 하위 기관으로 편입되었고, 군사력은 철저히 해체되었으며, 경제 구조 역시 식민 수탈에 맞게 재편되었다. 해방은 이 모든 구조를 되돌려놓지 못한 채, 권력의 공백 상태만을 남긴 사건이었다.
1945년 8월의 해방은 국가 수립의 완성이 아니라, 국가 부재 상태의 시작이었다. 조선에는 주권 국가로서 작동할 수 있는 통합된 정부도, 단일한 군대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을 대표 주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임시정부는 명분과 상징성은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 한반도를 통치할 물리적 힘과 행정 조직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반대로 국내에는 수많은 정치 세력과 이념 집단, 자생적 위원회와 무장 조직들이 난립했지만, 이를 하나의 권력 체계로 통합할 구심점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공백을 가장 먼저 메운 것은 인민의 자치가 아니라, 다시 한번 외부의 힘이었다. 미군과 소련군의 진주로 한반도는 해방과 동시에 분할 점령되었고, 이는 곧 국제질서의 문제로 전환되었다. 냉전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한반도는 스스로의 정치 체제를 선택할 여유를 잃었다. 공화정이냐, 사회주의냐의 문제는 인민의 토론과 합의의 대상이 아니라, 미·소 간 세력 균형의 일부로 취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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