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고착

by 이문웅

한반도의 분단은 한반도 인민들의 선택이나 합의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히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 전후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계산된 결과였다. 한반도 인민들은 전쟁의 당사자도, 승전국도 아니었으며, 국제 회의장에서 자신의 운명을 논의할 발언권을 가진 존재도 아니었다. 해방은 찾아왔지만, 그 해방의 형식과 이후의 질서는 한반도 인민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결정되었다.


1945년 일본의 패전이 확정되자, 연합국은 전후 처리 문제를 신속히 정리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는 독립을 준비하는 주체로 인식되지 않았고, 일본 제국의 잔여 영토이자 관리 대상 지역으로 취급되었다. 소련은 이미 만주와 한반도 북부로 진격하고 있었고, 미국은 태평양 전쟁의 종결과 함께 동아시아에서 소련의 영향력 확장을 차단해야 한다는 전략적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 두 강대국의 이해관계 속에서 한반도 인민들은 철저히 객체로 밀려났다.


38선은 이러한 현실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선은 한반도 인민들의 역사, 사회, 경제, 문화적 연속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군사적 편의에 따라 설정된 분할선이었다. 이 선을 기준으로 북쪽은 소련군이, 남쪽은 미군이 점령한다는 결정은 한반도 인민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결정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인민들의 의견은 묻지 않았다. 분단은 논의의 결과가 아니라 통보의 형태로 주어졌다.

이후 신탁통치 논의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에서 결정된 신탁통치는 한반도 인민들의 자치 능력이나 독립운동의 축적을 평가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미·소 간 직접 충돌을 피하고 전후 질서를 관리하기 위한 국제 정치적 타협이었다. 다시 말해, 신탁통치는 한반도 인민들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강대국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였다.


문제는 이러한 국제적 계산이 임시적 조치로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미군정과 소련군정은 각자의 점령 지역에서 자신들의 체제 논리를 이식하기 시작했고, 행정·치안·교육·언론 체계는 점점 분리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인민들은 하나의 정치 공동체로 다시 결합할 기회를 상실해 갔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역사를 공유하던 인민들은 서로 다른 정치 언어와 국가 상상을 학습하도록 강요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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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打誤 저서 : 동아시아오딧세이, 행복의 공식, 대한민국 건국영웅들, 네오젠, 네오젠시티, 네오갱, 사미예찬, 트레 뻬르소네, 라이프캡슐 예명 : 이타오 AI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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