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분화

by 이문웅

신분제도가 제도적으로 해체되고,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발상이 이 땅에 처음 등장한 것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의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1894년, 조선이 사실상 국가로서의 기능을 상실해가던 시점에서 시작되었다. 갑오개혁은 조선을 구해낸 개혁이 아니었지만, 조선이라는 체제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기존 질서를 공식적으로 부정한 사건이었다. 양반과 상민, 천민으로 이어지던 위계는 법률상 폐지되었고, 보통교육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국가 제도의 언어로 등장했다. 이는 근대적 평등의 출발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훨씬 복합적인 사회적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였다.


신분제의 해체는 단순히 억압의 제거가 아니었다. 그것은 동시에 보호 장치의 해체이기도 했다. 조선 사회는 극단적으로 불평등했지만, 한편으로는 각 계층이 감당해야 할 역할과 한계를 명확히 규정해주고 있었다. 태어날 때 이미 삶의 범위가 정해져 있었고, 개인은 그 범위 안에서 생존 전략을 세웠다. 신분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처음으로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앞에 놓였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되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도 함께 떠안게 되었다.


보통교육의 도입은 희망이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경쟁의 시작이었다. 교육은 누구에게나 열렸지만, 교육 이후의 삶을 지탱해줄 자본과 네트워크는 극히 불균등했다. 토지와 자산을 보유한 계층은 교육을 새로운 지배 수단으로 전환할 수 있었지만, 다수의 민중에게 교육은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 위험한 투자에 가까웠다. 이 시점부터 사회는 평등해진 것이 아니라, 불안이 구조화된 사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 불안은 식민지 시기를 거치며 더욱 심화된다. 일본 통치 아래에서 신분제의 잔재는 완전히 제거되었고, 노동과 임금이라는 근대적 질서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정 부분 개인의 이동 가능성을 확대했지만, 동시에 개인을 철저히 시장과 국가 권력에 종속시키는 구조이기도 했다. 공동체는 해체되었고, 개인은 제도 앞에 고립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혈통이나 신분으로 보호받지 못했고, 오직 노동 능력과 생산성으로만 평가받는 존재가 되었다.


해방은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지 못했다. 오히려 더 증폭시켰다. 국가는 약했고, 제도는 미완성이었으며, 전쟁의 그림자는 짙었다. 모두가 평등하다고 선언되었지만, 모두가 불안정했다. 이때 사회에 가장 강력하게 침투한 사상이 공산주의였다. 공산주의는 단순히 소련이나 중국에서 수입된 이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사회 내부에 축적되어 있던 불안과 박탈감을 정리해주는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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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打誤 저서 : 동아시아오딧세이, 행복의 공식, 대한민국 건국영웅들, 네오젠, 네오젠시티, 네오갱, 사미예찬, 트레 뻬르소네, 라이프캡슐 예명 : 이타오 AI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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