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선물은 생과 사
일론 머스크는 스스로를 인류의 구원자로 믿는다. 화성 식민지, 재사용 로켓, 전기차,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그의 상상은 언제나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지금의 인간을 넘어서는 것. 그런 의미에서 그는 트랜스휴머니즘의 가장 강력한 실천가다.
트랜스젠더가 생물학적 성별의 경계를 넘어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 하듯, 트랜스휴먼은 생물학적 한계 자체를 넘어서려 한다. 노화, 죽음, 인지의 한계. 머스크에게 이것들은 극복해야 할 버그다. 뉴럴링크로 뇌를 컴퓨터에 연결하고, AI와 융합하고, 의식을 업로드하는 것. 그것이 그가 그리는 인류의 다음 단계다. 그러나 이 상상이 막대한 자본과 결합할 때, 긴 그림자가 생긴다.
제프 베이조스는 알토스 랩스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세포 재생을 연구한다. 래리 엘리슨은 노화 정복을 "나의 사명"이라 공언했고, 피터 틸은 젊은 피를 수혈하는 파라바이오시스 연구에 자금을 댔다. 세계 최고 부자들이 공통적으로 겨냥하는 표적은 죽음이다. 문제는 그 기술이 완성됐을 때다. 500년을 사는 억만장자와 70년을 사는 평범한 시민이 같은 세계에 공존하게 된다면, 계급의 격차는 더 이상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종(種)의 문제가 된다. 죽음은 잔인했지만 평등했다. 그 평등이 사라지는 순간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가 무너진다.
머스크의 상상은 과학을 넘어 정치로도 번졌다. 그는 DOGE를 통해 미국 연방정부를 비효율적인 코드로 규정하고 삭제하려 했다. 국가를 운영체제처럼 다루는 이 사고방식은 공학적으로는 논리적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위험하다. 민주주의의 느린 절차와 복잡한 견제 시스템은 버그가 아니라, 다수의 폭력으로부터 개인을 지키는 완충 장치이기 때문이다. 효율이 최고 가치가 되는 순간 국가는 최적화된 기계가 되고 인간은 부품이 된다.
그렇다면 그는 선지자인가, 악마인가. 아마 둘 다 아닐 것이다. 그는 내부 논리가 완벽하게 작동하는 상상 안에 갇힌 인간이다. 스페이스X가 로켓을 수직 착륙시켰을 때 우리는 경이로움을 느꼈고, 테슬라가 자동차 산업을 바꿨을 때 우리는 미래를 봤다. 그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속도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초월을 향한 상상이 검증 없이 권력과 자본과 결합될 때, 그 끝에 무엇이 남는지는 아무도 보장하지 못한다.
느리고, 모순되고, 비효율적인 것들. 사랑, 애도, 실패, 연대. 이것들이야말로 인간이 단순한 생물학적 기계와 달랐던 이유다. 가장 완벽하게 업그레이드된 인간이 가장 먼저 잃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고자 했던 욕망 그 자체일지 모른다. 머스크의 상상은 계속될 것이다. 그 상상의 바깥에서 우리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질문은 단 하나다.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