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우리는 '인간은 동물이다' 라고 말했지만 인간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이 말은 종교적 문장에서 시작되었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를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는 표현 중 하나다. 우리는 굶주림을 견디기 위해 음식을 찾지만, 동시에 무의미를 견디기 위해 이야기를 찾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가장 정교한 형태가 바로 ‘이상’이다.
이상은 단순한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약속이며, 현재의 고통을 정당화하는 장치이며,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상징이다. 이상은 보이지 않지만 사람을 움직인다. 그것은 물리적 힘이 아니라 정신적 힘이다. 그러나 정신적 힘이야말로 가장 오래가고, 가장 깊게 파고들며, 가장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상은 마법과 닮았다.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믿게 만든다. 이상도 그렇다.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상태를 이미 도달 가능한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 믿음이 집단적으로 공유될 때, 현실은 재편된다. 문제는 그 재편이 언제나 우리가 기대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18세기 프랑스에서 사람들은 “자유, 평등, 박애”를 외쳤다. 이 구호는 단순한 정치적 요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분제 사회를 무너뜨리는 주문이었다. 귀족과 평민, 성직자와 농민을 구분하던 질서는 단숨에 도전받았다. 이상은 왕권보다 강했다. 그러나 혁명이 진행될수록 이상은 점점 더 강경해졌다. 혁명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의심받는 자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공포정치의 중심에 섰던 막시밀리언 로스피에르는 자신이 정의를 수호한다고 믿었다. 단두대는 잔혹했지만, 그에게 그것은 평등을 위한 수술 도구였다. 이상은 피를 흘리게 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정의의 대가라고 받아들였다.
여기서 우리는 이상이라는 마법의 첫 번째 속성을 본다. 이상은 폭력을 정당화한다. 개인적 욕망을 위한 폭력은 비난받지만, 정의를 위한 폭력은 숭고하게 포장된다. 이때 폭력의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 바뀌는 것은 해석이다. 그리고 해석을 바꾸는 힘이 바로 이상이다.
19세기에 들어서면,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불평등은 또 다른 이상을 탄생시킨다. 공장 노동자들의 긴 노동 시간과 열악한 환경은 분명 문제였다. 이를 분석한 인물이 칼 막스다. 그는 자본주의 구조가 노동자를 착취한다고 보았고, 계급 투쟁을 역사 발전의 원리로 설명했다. 그의 분석은 날카로웠다. 그러나 그 분석은 곧 신념으로, 그리고 신념은 혁명의 언어로 변했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이 사상을 현실 정치로 끌어내렸다. 평등한 사회, 계급 없는 국가라는 이상은 러시아 대중에게 강력한 희망이 되었다. 차르 체제의 억압 속에서 이상은 구원의 약속처럼 들렸다. 혁명은 성공했다. 그러나 혁명 이후 등장한 것은 완전한 평등이 아니었다. 당 관료와 권력 핵심부는 새로운 특권층이 되었다. 계급은 사라졌다고 선언되었지만, 권력의 위계는 다른 이름으로 존재했다. 이상은 여전히 외쳐졌고, 실패는 외부의 적이나 내부의 반동 탓으로 돌려졌다. 마법은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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