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정치사는 단순히 권력을 차지한 사람들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 어떻게 정당성을 얻었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권력은 언제나 자신을 정당화할 언어를 필요로 한다. 무력만으로 유지되는 권력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폭력에 복종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정당한 질서라고 믿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권력은 자신이 단순한 지배가 아니라 어떤 더 높은 가치와 이상을 실현하고 있다는 믿음을 만들어내려 한다. 그 믿음이 만들어질 때 권력은 비로소 안정된다.
역사를 돌아보면 그 정당성의 언어는 시대마다 달랐다. 고대 세계에서 권력의 정당성은 신에게서 나왔다. 왕은 신의 대리자였고, 왕권은 신성한 질서의 일부로 이해되었다. 중세 유럽에서도 왕권은 신의 섭리 속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설명되었다. 왕에게 복종하는 것은 곧 신의 질서에 복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가 시작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신의 권위가 약해지고 인간이 정치의 중심에 등장하면서 권력은 더 이상 신에게서 정당성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권력은 인간에게서 정당성을 얻어야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정치의 언어 속에 등장하기 시작한 개념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평등이었다.
평등은 인간이 가장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정치적 언어다. 누구나 자신이 부당하게 차별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더 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등이라는 말은 단순한 도덕적 이상을 넘어 정치적 동원력을 가진다. 사람들은 자유라는 말에는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평등이라는 말에는 본능적으로 끌린다.
바로 이 지점에서 평등은 정치의 가장 강력한 언어가 된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수많은 권력은 바로 이 언어를 통해 탄생했다.
프랑스 혁명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18세기 말 프랑스 사회는 극단적인 신분 질서 속에 놓여 있었다. 성직자와 귀족은 세금의 대부분을 면제받고 있었고, 농민과 시민들은 국가 재정의 부담을 떠안고 있었다. 경제 위기와 식량 부족이 겹치면서 사회적 긴장은 극도로 높아졌다. 이때 등장한 정치적 구호가 바로 “자유, 평등, 박애”였다.
이 구호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존 질서를 정당하지 않은 것으로 만드는 언어였다. 귀족의 특권은 불평등의 상징이 되었고, 왕권은 부당한 지배로 규정되었다. 평등이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정치 질서를 요구할 도덕적 근거를 제공했다. 그리고 그 결과 프랑스 혁명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체제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혁명의 과정에서 나타난 현실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혁명을 이끌었던 정치 세력은 곧 권력을 장악했고, 혁명의 이름으로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로베스피에르가 이끌던 공포정치는 혁명의 이상이 어떻게 권력의 도구로 변하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였다. 평등을 외치며 시작된 혁명은 결국 수많은 사람을 단두대에 세우는 체제가 되었고, 혁명은 결국 또 다른 권력자인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평등의 언어로 시작된 혁명이 결국 새로운 권력 체제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프랑스 혁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비슷한 구조는 다른 역사에서도 반복된다.
러시아 혁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을 때 볼셰비키는 노동자와 농민의 평등을 약속했다. 그들은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모든 사람이 착취 없이 살아가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혁명이 성공하고 권력이 장악되자 상황은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레닌 이후 등장한 스탈린 체제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 중 하나가 되었다. 당은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고, 국가 권력은 개인의 삶 전체를 통제했다. 평등을 말하며 시작된 혁명은 결국 권력이 극단적으로 집중된 체제로 변했다.
이러한 구조는 중국 혁명에서도 반복된다. 마오쩌둥은 농민과 노동자의 평등을 내세우며 혁명을 이끌었다. 그러나 권력이 확립된 이후 중국은 거대한 정치적 권력 구조 속으로 들어갔고, 문화대혁명과 같은 정치적 운동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는 하나의 공통된 구조를 보여준다. 평등이라는 언어는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는 데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권력이 형성된 이후에는 그 평등이 실제로 구현되기보다는 새로운 권력의 정당성을 유지하는 언어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이 구조는 한반도에서도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DPRK는 건국 초기부터 평등한 사회를 표방했다. 김일성 체제는 노동자와 농민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모든 인민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선전 속에서 그 사회는 착취가 사라진 이상적인 사회로 묘사되었다. 외부 세계에는 그것이 ‘지상낙원’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북한 사회의 구조는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정치적 계층 구조를 가진 사회 중 하나다. 출신 성분에 따라 사람들의 삶이 결정되고, 정치적 충성도에 따라 사회적 위치가 달라진다. 권력은 극단적으로 집중되어 있으며, 정치 권력은 세대를 넘어 세습된다.
평등을 말하며 탄생한 국가가 실제로는 가장 강력한 권력 집중 체제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을 단순히 특정 체제의 실패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 정치의 반복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평등이라는 말은 기존 권력을 무너뜨리는 데 매우 강력한 정치적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권력이 형성된 이후에는 그 평등이 새로운 권력을 정당화하는 언어로 변하기 쉽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